한 남자랑 오래 살다보니 전에 없는 습관이 하나씩 생겼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그 대신 아홉시 뉴스 보고 일찍 코를 골며 자기
남편 이런 나를 보고 붙인 별명 일명 잠퉁이
라디오 틀기
쌀 박박 씻어 보기
시장간다고 나와서 찜방가서 수다떨기
집에 와서 알바했다고 거짓말도 몇 번 했고
게으른데다가 느린것은 원래 그랬는데 성질 내는 건 속사포처럼 시속 200키로 과속을 하고 뒷감당 못해서 늘 머리만 박박 긁기.
같이 살아보니 나도 참 어지간한 마누라다.
하긴 요즘 남자들 마누라에게 쫒겨나는 세상이다.
옛날엔 남자들 세상이라면 요즘은 마누라시대라니 격세지감이다.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내 예상은 돈을 못 벌어서 쫒겨 난 줄 알았는데
대답도 세대별로 틀리단다.
40대: 밥 달라고 하니 나가라고 하데유..
50대: 마누라보고 어디가냐구 물었더니 쫒겨 났어요..
거기다가 같이 가자고 하면 큰 일나는 거지유..
60대: 마누라가 드라마 보는디 그 앞에 얼쩡거렸다고 비키래유..
70대: 아침에 눈 떴다고 나가래유...
헤헤..참 별 희안한 수다지만 가슴이 싸아하다.
근디 나도 그렇다.
남편이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으면 괜히 신경질 나는 거다.
거기다가 같이 가자고 하면 당연히 속사포 과속으로 다다다..쏘아 붙일테니.
그래도 나같은 마누라랑 같이 살아주느라 고맙다고 해야 되는데
요 입이 친절하게 익숙하지 못해서 여태 못했다.
이젠 현장세대체험시대란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 죽을 때까지 밥도 해주고 빨래도 청소도 같이 해야하는 세대란다.
남자라고 앉아서 무조건 밥달라고 했다간 그 노후는 끝까지 보장 못한다.
돈 많이 벌어 줬다고 생색내도 안 늙는 남자 없고 돈 많다고 영원히 잘 사는 목숨없다.
서로 등이 어디가 젤 가려운지 오래 같이 살다보면 말 안해도 안다.
매일 같이 살면서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보이지 않는 그 수많은 선들로
꽁꽁 묶여져 어디 멀리가도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다시 돌아오는 뭔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어쩌겟는가? 웬수니 상전이니 악연이든 이상한 것은 나이앞에 힘쎈장사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식이 봉양해주는 시대도 철 지난 유행이 되었으니
나 죽고난 뒤 송장 되고 난 후 옆에 서주는 사람이 제일이다.
사람 참 징글징글하게 살다가 사랑 하고 갔네..
이런 조사는 읽어줄 사람이 내 옆에 있을 떼 잘 챙겨줘야 하는데
아직 내가 성질이 팔팔해서 그런가 입이 안 떨어진다.
연습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