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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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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사건


BY 천정자 2010-02-22

" 어떻게 거기만 가렵냐?

꼭 남편과 싸운 날은 등허리에서 가운데 날개 죽지 그 사이 홈이 패인데에

내 손가락을 대고 박박 긁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내 손가락의 길이가 1cm만 더 길어도 아주 시원하게 긁을 수 있는데.

 

남편과 싸운 이유는 사실 별 게 아니다.

울 집 세탁기는 누가 주긴 줬는데 자세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고 아뭏튼 이사가는 집이 새 집이라고 헌 것 버리고 새 거 쓴다면서  울 집에 버리듯이 주고 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세탁기가 들어 오기 전에 나나 남편은 손세탁을  하다가

세탁기가 들어오니 서로 손빨래를  미루게 되고 더군다나 느리고 게으른대회 나가면 당당히 우승감이라고 늘 놀림받는데도  별 이의가 없던 나였다.

 

구식이라도 잘 돌아가던 이 세탁기가    그만 이상한  탕탕 소리를 내더니 덜커덕 멈춘 사건이 난 것이다.

남편은 서비스를 부르라고   하고  나는  남편보고  고쳐보라고 하고  당연히 서로 우기다가

결국은  또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힘이라면 당연히 나보다 남편이 한 수 위다. 물어보나 마나  빨래를 비빌 때도 물을 휑구어 짤 때도 남편은 건조기 짤순이보다 더 잘짠다. 같이 살림하다보면 잘하는 특기는 힘껏 밀어주기. 칭찬 해주기 이거 이럴 때 유용하게 쓴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빨래를 잘하고, 나는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빨래 잘 개고 그럼 똑같은 살림을 한 것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남편은 그 게 아니었나보다.

" 당장 서비스오라고 한 적이 몇 칠 됐냐?"

" 왜 못 부르냐?"

그럼 나의 대답은

"오늘이 금요일리고 내일부터 토요일이고. 모레는 일요일인디? 누가 부르면 월요일날  온다고 하지 지금 부른다고 누가 온데?"

이상한 것은 부부싸움은 꼭 금요일 저녁이다.

 

" 글고 저것도 보나 마나 부속이 없네 뭐네 못 고칠 것 뻔하구먼?

내가 한 말이 틀리던 맞던 남편은 또 목소리 크게 화부터 낸다.

나는 또 팩 토라져 안방에 이불 뒤집워 쓰고 벌러덩 드러 누우니까,

' 저 저 그 성질 어따 못 버리지 애들이 본다 애들이?'

 

지금 애들이 문제냐? 그나 저나 세탁기가 요즘 얼마나 하나 시장조사 좀 해야 하나?

돈이나 팍팍 주면서 뭐 좋은 새로운 모델로 사오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냐구?

속으로 구시렁 구시렁 거리고

내 다신 말도 안 하고 밥도 안먹고 몇 칠이고 데모 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 한지 십분이나 지났나.

나의  등허리에 스멀스멀 뭐가 기어다니나 자꾸 근지럽다.

웬만한 등허리 손이 가는데로 긁긴 긁는데  영 시원치 않다.

하필 말도 안하고 삐져서 입이 오리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와 울퉁불퉁 곰탱인데.

등허리만 우선 긁어 보라고 남편에게 부탁하면 그나마 내 자존심은 

장날 파장할 때까지 안팔려서  떨이로 팔린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대로 소용이 되는 효자손도 없고 그나마

도깨비 빗을 길게 잡아 최대한 범위를 넓게 잡아 등허리에 넣고 있는데

' 또 등 가렵냐?" 남편이 문을 벌컥열고 나를 본 것이다.

 

"거 봐라? 성질 피면  몸이 근질근질하지? 엉?"

체면이고 뭐고 우선은 등부터 긁어 줘? 이러고 싶은데

이미 남편이 내 등짝에 손을 넣고 벅벅 긁고 있었다.

 

"으흐흐..이렇게 시원 한 걸..

근디 자기야 울 세탁기 어떡혀?'

' 뭘 어떡혀? 서비스 불러야지 월요일날?"    

 

못 고치던 잘 고치던 월요일 날 서비스기사님이나 오라고 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