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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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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맞추기


BY 천정자 2010-02-16

새 해엔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절대 정신 차리자!

남편에겐 이제 똑똑한 마누라로 거듭나자!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어른티 좀 내자! 등등

그 나머지는 기타등등이고.

 

그 맘을 더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가족이 단체로 찜질방에 갔다.

옛날은 몸과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서 한 겨울에 얼어붙은 계곡을 깨뜨려 거기에 입수하는 것은

구경만 하고 그래도 우린 뜨끈뜨끈한 등을 지지며 구운계란을 몇 개 먹었나 세어 보고 계란 한 판

다 먹기전에 또 늘어지게 자는 것이 한 해 건강 다짐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나간 한 해를 거슬러보니 별로 한 일도 없고 딱히 대표적인 사건이나 획기적인 생활의 발견도 밋밋해서

찾을 것도 없는데, 유난히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그 때 그 친구가 나에게 십만원 꿔 간거랑. 한 달 후에 준다는 날짜도 벌써 한 해가 되어 지났는데, 작년에 나의 오래 된 핸드폰이 그만 화장실에 풍덩 빠져 그 친구 전화번호도 잠수타게 된 게 그것이 딱 떠오르냐? 그 돈 받으면 나 뭐할려고 했긴 했는데. 심지어 두 달치 전화요금이고 나의 생활비를 몇 %를 차지하나 이렇게 까지 내가 쫀쫀하게 계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누군가에게 돈을 꿔서 갚을 날이 달국달국 오는 쫒김은 아니기 때문에 그거 하나로 위로삼고, 나 하나 건강하여 울 가족들 잘 챙기고 병원 자주 안가고 큰 병 안나서 병원비 아끼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이래저래 손해본 것보다 이렇게라도 아직 건강하니 어느 재벌의 건강보다 더 비싼 것이라고 만족했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니 자꾸 엉덩이도 등허리도 뜨듯한데 비비고 지지고 싶다. 애들보고 들어오라고 막에서 손 짓을 해도 문 앞에 얼굴만 디밀더니 뜨거운 열기에 후다닥 뒷걸음 친다.놀이터처럼 여기 저기 뛰어다니더니 지쳤나 피씨게임에 얼굴이 박혔다.

 

남편도 너른 바닥에 배깔고 누워 대형화면의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도 한 참 보다가 자다보니 남편이 깨운다.

" 야! 야! 여기가 울집이냐? 무슨 코를 그렇게 고냐? 여자가?"

내가 피곤하긴 했나 보다. 그러면 영낙없이 코를 드르렁 곤다는 것을 남편은 알면서 옆사람 눈치를 더 본다.

내가 여자인가? 이 상황엔 어떤 마누라가 코를 곤다는 게 당연한거지.

 

애들이 배고프단다. 식당에서 뭐를 먹을까 메뉴를 고르는데 지갑을 찜방옷장에 있으니 1층에 내려가서 내 번호를 찾아 키를 꽂았는데 입구부터  키가 사이즈가 안맞는다. 다른 번호인가 옆 구멍에도 또 그 옆 구멍에도 찔러도 영 안맞는 것이다. 목욕탕 매점에 아줌마한테 

" 열쇠가 안 맞아요?" 이렇게 열쇠를 그 아줌마에게 주니

" 어이그! 아줌마 이건 차키 잖아요?"  

 

아! 나는 정신을 차리고 굳게 결심을 하러 왔는데. 애들한테나 남편한테 이 애길 못했다.  

아직 정신 멀쩡한 마누라와 엄마라고 난!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