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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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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일


BY 천정자 2010-01-07

결혼한 지 이십년 된 해

2010년 오늘 1월 7일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기어히 몇 주년 기념식으로 결혼 기념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은 나이다.

이십대나 서른은 뭣도 모르고 서툴게 살다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했던 사십대도

가속이 붙어 언제 간 지 모르게 지나쳤다.

 

 

오래 살다 보니 집안에 가전제품도 골골하다.

14년 된 테레비는 이젠 작동은 영원히 멈춤이다.

못쓰는 고물이라고 내다 놓으니 원래 시꺼먼 색에 먼지만 잔뜩 들러 붙었다.

그래도 저게 울 아들 딸 돈 벌러 나가느라 엄마 아빠 없을 때. 해리포터 영화 본다고 하루종일 채널을 못 돌리게 하고 만화영화에 푹 빠져 비디오를 보고 또보고 하더니 이젠 만화 그린다고  학교를 다닌다. 혼자서 하나 둘 셋 유아방송 보고  엉덩이 씰룩 씰룩 흔들며 춤추게 한 것이나 , 울 남편 연속극보느라 나보다 더 옆에 끼고 쳐다보는라   더 애지중지한  보물이었건만.

 

아무도 안 가져 간단다.

하다못해 고물 팔아요! 하시는 고물장수도 그냥 줘도 못 가져 간단다.

고물 분리수거가 더 돈이 들어간다는데. 시청에 전화를 걸어 쓰레기 스티커를 사서 붙이면 가져간단다.그래서 나도 다시 생각을 깊게 해 보았다.

나는 아직 화장대가 없고 큰 반달경은 있는데, 다니던 병원에서 게시판으로 사용하던 직사각형 합판을 그 테레비위에 턱 올려 놓으니 우와 나만의 화장대가 되었다.

안 나오는 테레비가 이젠 나의 화장대가 되어 나는 그위에 딸이 선물 받은 작은 곰 인형을 앉혀놓고 보니피식 웃음이 나온다. 으이그 누가 곰탱이 마누라 아니랄 까봐 화장대까지 곰인형을 놓냐고 할 것 같다.  

 

시나브로 고장나는 가전제품도 하나 하나 교체해야 할 때가 오나 보다.

하긴 사람이나 기계나 오래 되면 년식이 오래 되어 아프고 저리고 수명을 달리하는데 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두 어달 전에 이젠 전기 압력밥통이 돌아 가셨다.

서비스썬터에 가니 부속이 없는 단종모델이란다.

이 참에 좋은 최신식 밥통하나 교환하란다.

그래도 그걸 그냥 들고 돌아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밥통이 내가 남편하고 싸우다가 성질 난다고 부아가 치밀어서 마당에 냅다 집어던진 그 밥통이다. 그 때 울 남편 나에게 그랬다.

" 아니 딴 집엔 남편이 때려 부셔서 난리라는디 어째 이 마누라는 밥상을 엎지 않나 이젠 밥통을 집어 던지냐?"

그 말을 듣고도 난 철이 덜 들어선가 한 마디 했었다.

" 그니게 왜 내 성질  건드리냐구? 엉?"

그런데 밥통을 냅다 집어 던질만큼 성질 부리겐 한 그 이유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이럴 땐 내 기억력에 고마워해야 되는지 헷갈린다.

지금이라도 남편에게 내가 그 때 왜 밥통을 던졌을까 ? 물어 보고 싶은데. 그럼 혼 날 것 같아서리. 헤헤 오래 같이 살다보니 대충 눈치 몇 단은 승급한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밥통이 밥이 안 된다. 그런데 보온은 된다. 그래서 제일 하기 좋은 게 식혜다. 처음엔 식혜에 설탕과 소금을

넣었더니 울 남편 이젠 그만 요리 연구 좀 하란다.

" 세상에 식혜에 소금을 누가 넣으라고 꼬시데?" 울 아들 그런다.

" 엄니..우린 가족은 마루타가 아녀~~"

만든 식혜가 엄청 많다. 맛은 알카리 이온 음료맛이 난다고 했더니 엄마 혼자 다 먹으란다.

 

보온만 되는 밥통은 있으나 마나고 이젠 전기밥통을 사러 가야겠다.  이십년 결혼 기념선물로 울 남편에게 근사한 빨간 밥통을 사자고 했더니. 기가 막힌가 암말없네. 나 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