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허스키해서 예쁜 얼굴과 안 어울린다고 늘 불만이였다.
내 보긴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나보다 한 십년 연배로 명문대를 나오고 전원생활 한다고 시골로 내려 온 여자였다.
전원생활한다고 내려온 곳에 그 여자의 남편은 농장을 하겠다고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무엇을 심을까 늘 바쁘게 살았다. 그 여자는 남편의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골에서 타지에서 온 이주민들은 일단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나도 타지에서 내려 온 덕분에 몇 년을 살아도 겨우 조금 산 것 같다고 느끼는 현지인들이었다.
도시에선 무슨 화장을 해도 튀지 않을 것이지만, 그 여자는 눈이 큰데다가 핑크색 아이샤도를 넓게 진하게 바르고 푸른색 아이라인을 굵게 그려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어느 영화배우가 넓은 챙모자를 쓰고 동네 골목에 나타난 줄 알았다. 롱드레스를 즐겨 입었고 뜨거운 여름날은 레이스로 된 양산을 쓰고 다녔다.
그 당시 나는 막내를 안고 업고 다녓는데. 애 엄마가 포대기를 두르고 다니다보면 끈이 헐렁해져 애는 애대로 나는 나대로 후줄근해져 길바닥에서 다시 업쳐 단단히 끈을 매었다. 그 때 그 여자가 나를 지나치면서 우리 애를 보더니 한 마디 했었다.
"어머머..엄마랑 똑같네요..콧등에 주근깨도 어쩜 ! 귀엽네요?"
살면서 누가 나보고 귀엽다거나 이쁘다거나 그런 말은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울엄마도 나를 낳고 누가 니애비 아니랄까 봐 그렇게 똑같냐? 했었다.
그런데 나의 딸이 나를 그렇게 똑같이 닮아서 누가 우리 애보고 이쁘네요. 귀엽네요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콧잔등에 파리똥같이 찍찍 갈 긴 주근깨까지 귀엽다니.
아마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무슨 힘이 났는지 줄기차게 나의 딸을 업고 그 여자네 집에 괜히 한번 더가고 싶고, 그래서 왕래가 잦았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 끼리 온 동네 눈치도 대신 읽어주고 어느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고,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나도 말 앞가림 한다고 신경써서 하게 되면 자꾸 바벅 대었는데, 그 여자 앞에선 편안하게 내 속애길 저절로 털어놓았다. 그래도 탈 없을 것 같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전원생활한다고 내려온 지 만 삼 년만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을 한 것이다. 그 여자는 한 동안 칩거를 했다. 집에 사람이 있는데 오도가도 안한지 몇 개월 지나서 나를 찾아 왔다.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남은 사람들의 겪어야 할 휴유증에 시달리데로 시달려 초췌한 알굴이 되었다. 이사온 지 만 삼 년이라고 해도 아직 여기선 낯설은 타지인의 사망에 무관심한 것은 더욱 설움이 복받쳐 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찾아 왔다.
" 저기 사망진단서를 찾아서 사망신고를 하러 가는데 나랑 같이 갈래요?"
남편이 남겨놓은 재산중에 외제차 한 대가 창고에 그냥 그대로 있었다.
" 이젠 내가 저 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내가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
" 바보같이 옆에서 같이 잤는데 아침에 나는 눈뜨고 이 사람은 눈을 못 뜨는거야"
" 나 천치인가봐? 면사무소가 어디인 줄도 모르고 사망신고도 어떻게 하는 줄 몰라서 애기엄마랑 같이 가는거야'
" 은행에서 전화 왔는데 도대체 무슨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남편의 부재로 겪은 일들을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그 많은 일들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남편에게 경제권을 다 일임해놓고 자기는 공주처럼 산 것이란다. 그 땐 그런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고, 남편도 그런 것을 당연히 생각했었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유서에다가 뭘 어떻게 살라고 자세히 안내문도 없이 막 살은 것이라고 한참 하소연을 했다.
앞으로는 혼자 살림을 해야 하는데. 죽은 사람이나 산사람이나 황당하다는 것이다. 그 땐 나는 젊었었다. 그래서 그 애길 듣고 있는 동안 내일 나는 방세를 내야 하고 그 다음날 밀린 세금을 내야 하는데. 무능한 남편욕을 하고 있었다. 왜 나는 이런 시원찮은 남편을 만나 달이면 달마다 날이면 날마다 돈때문에 고민하고 사나 이렇게 한탄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와 같이 동사무소에 가서 시망신고서에 그녀는 또박또박 남편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주민번호를 쓰려니 사망신고사를 들여다본다. 남편의 주민번호도 사망한 날 병원에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리곤 한 마디 더 했다.
"내가 남편을 너무 혹사시켜 두 번 죽인거야..내가 .."
그렇게 사망신고를 한 날 나는 그녀의 집에 있는 곳 까지 말없이 걷고 걸었다.
이사오고 우리 동네에 갈대밭이 길게 뻗어 강둑이 있고, 완만하게 흐르는 작은 강줄기가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 그 때가 11월 중순 쯤이엇을 것이다. 바람이 길을 내어 흐르는 강줄기 언덕에서 남편의 유골을 흩뿌렸다고 했다.
다시 서울로 갈지 아니면 친정 동네에 근처에 작은 집을 얻어 살 것인지 고민을 했었다. 집을 은행에 넘겨주고 남편의 급작스런 사망에 농기계도 모두 싸게 처분하고 대충 남은 살림도 어떻게 할까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참 난감했다.
그런데 그녀가 읽었다는 책들을 가져 가려냐고 묻는다. 이사 갈려니 남편이 있을땐 무겁게 느끼지 않았던 책이 알고 보니 몇 백권이 넘는단다. 그녀의 집에 가서 보니 내가 가져 올려도 몇 번 수레에 실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고물상에 넘길려도 너무 아깝단다. 다른이에게 헐하게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나보고 잘 좀 지켜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또 다른 타지로 떠났다.
지금 그녀가 준 책을 둔 창고를 가보니 세월이 먼지가 되고 켜켜히 쌓여 있었다. 너무 젊어서 잘 느끼지 못하고 몰라서 함부로 결정해서 후회만 남듯이 그렇게 책들도 오랫동안 늙어가고 있었다.
한 권 한 권 먼지떨이로 털어서 다시 포개고 세우고 그러다가 읽을 거리는 내 방에 몇 권 갖다가 옮겼다. 어느 중고 가구 매장에 책장 튼튼한 것을 사러 가야 겠다.
지금 쯤 어디서 잘 살고 계신지 이 자리를 빌어 안부드리고 싶다. 그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