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기억력 때문에 아예 머릿속엔 욕만 잔뜩 들러 붙어 버렸다.
누굴 욕을 한다고 해도 그 욕 내가 다 듣지만 어쩔 수 없다.
차 키를 잃어버려 한 참 가방을 뒤집어 엎어 그래도 안 나오니
구석구석 뒤져도 찾을 수 없엇다.
큰 일났다 싶어 차는 잘 있나 싶어 차에 가보니 멀쩡하게 키가 꽂아져 있었다.
문은 당연히 잠기고
"아! 이런 거는 잘 못하는디?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비상키를 갖고 잇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한두번이야지. 늘상 칠칠치 못하게 잃어 버린다고 창고 열쇠와 같이 묶여 잇는 키가
생각 난 것이다.전화를 하니 당연히 소리소리 지른다.
" 어이구 이 여편네야?내가 지금 나락 털구 있는디 언제 거기까지 가냐구?"
여기서 나락이라는 것은 너른 듪판에서 무르익은 벼이삭이다.
에라이 모르겠다.그냥 버스를 타고 집에 갔더니
" 그렇다고 차를 버리고 오냐?"
그래도 집에 왔다고 다행이라고 했다.
현금카드도 하도 잃어버려서 카드로 돈 찾는 것은 오래 전부터 못한다.
재발급 받으려니 그것도 순서가 복잡하다.
폰뱅킹인가 뭔가 신청하라고 해서 했더니 비밀번호가 세 번 틀렸다고 은행에 본인이 직접 방문하란다.
그 본인이 요즘 아주 바쁜 남편인데 내가 이 말 하니까
" 으이그..그 비밀번호 이젠 확실하게 머릿속에 박아 놔야 된다" 이런다.
아무리 둘이서 잘 기억나게 숫자배열을 했지만 너무 쉬운 것은 아예 안된다고 접수 불가란다.
그럼 어쪄?
그래서 기억하기 좋고 말하기 좋고 두 번 죽어도 비밀번호는 영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심사숙고하야 당첨 된 비밀번호는 1818 이다.
울 남편 옆에서 낄낄댄다. 이 참에 남편통장 비밀번호는 몽땅 다 통일 해버렸다.
그려 정말 못잊어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헤헤
그런데 울 아들이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화가 왔다.
또 비밀번호를 선택하란다. 뭘로 할까 한참 궁리 했는데
가만히 보니 울 아들 올 해 열여덟이다.
그랴 너두 1818로 혀?
나중에 울 아들 그런다.
엄미! 왜 그러셔?
헤헤..너두 내 나이 먹어봐라 나의 맘을 쪼게 알 것이다.
그런데 이 죽일놈의 기억력이 중 3 때 성적표는 잘도 기억 하는 것이다.
상위권도 아니고 중상도 아니고 거의 꼴찌로 맴도는 성적이 서서히 기억이 나면서
나의 아이큐가 88이라는 것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니 참 알다가도 모를 나다.
내 친구에게 나는 심각하게 내 아이큐가 88이라고 했더니
" 야 그거 높은 수다. 팔팔장땡이야!"
으이그..그 유명한 고스톱 못한다고 할까봐 갖다 붙이는 수준이나 그 말 듣고 숫자가 높다는 말에 어이 없는 없는 얼굴이 된 나나 도진개진이다.. 성적표 기억은 그래도 괜찮은데 가슴이 쓰리고 아픈 기억들은 기억하지 않을려도
불쑥 튀어나오니 막을 길없고 달랠 수도 없었다.
간혹 과거 있는 여자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나 왕년에 뭐 잘햇네 그런 기억을 주워 담아 체면 세워 주는 기억들은 적시적소에 써 먹으려면 갑자기 캄캄한 한 밤중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또 다른 기억 주머니가 몰래 감춰진 것이 있을까 괜히 그런 것만 궁금하고 그렇다.
오늘도 또 수다를 떨었으니 잠은 잘 오겠다. 이거 하나면 되었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