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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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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을입니다.


BY 천정자 2009-10-06

 

몇 년을 병원에서 일을  하다보니 이젠 자연스러운 광경이 된 상황이 참 많다.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치매병동이 따로 있었던 병원인데 이 병원엔 문을 안에서 잠그고 바깥에선 늘 열리는 문이 있었다. 치매환자들을 위해서 문을 개발 한 것인데. 문 안에 번호가 새겨져 있는 버튼이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린다. 한 치매환자가 이 문 앞에서 번호를 자꾸 누른다. 왜 그러시냐고 여쭤보니 딸내미한테 전화 한다고 번호를 누르는데 왜 전화가 안되냐고 하신다.

그건 문이라고 알려 줘도 문에 전화기가 달려 있다고 우기신다. 

엘리베이터를 버스라고 하신다. 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그러는데 첫 차가 언제갔냐고 막차가 언제오냐고 하신다. 그렇게 그 버스를 타신다고 당신 소지품을 소중하게 싸서 비닐봉지에 넣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계신다. 나는 다리가 아프시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리고 간이 의자를 드렸다.

" 새댁은 몇 살이여?"

" 요즘 한 참 고구마 캐는디 ..."

" 김장 배추 심었는디 요눔들이 다 갂아먹어부려?"

가끔 꿈을 꾸시나 꿈 애길 하시고 당신 한 참 잘 나가가던 왕년을 꿈결처럼 말씀하신다. 여기가 치매병동만 아니면 어느 마을에 조용히 호미를 들고 때 맞춰 김  매가면서 가을 들녘을 굳은 허리를 펴가면서 생활하실텐데.

당신의 생각엔 늘 그렇게 산 애길 매일 같이 똑같은 행동과 말씀을 혼자서 하신다.

변비가 심하셔서 화장실 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 하신다.

몇 칠 못 본 배변은 이미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 장맛사지를 하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파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 분이 그 때마다 정신이 번쩍 뜨는 말씀을 하신다.

" 아이그 ! 죽을 때까지 벽에 똥칠은 하지 말아야 된당께!"

" 내 발로 내가 걸어 화장실 댕기는 것두 복이여! 암!"

"  어떤 내 자식이 내 대신 배 아프게 똥 싸주는 건 없지?"

화장실에서 하는 월례행사처럼 장맛사지를 통한 배변을 보시는데.  통증이 심하다. 말이 그렇지 이미 굳을대로 굳은 대변을 억지로 장을 뒤틀어 내놓는 것이니 그 아픔이 대단 할 것인데. 그 때만은 정신이 멀쩡하신가 하시는 말씀마다  고르고 맞는 말씀을 하신다. 변비약을 오랫동안 복용한 덕으로 웬만한 충격으로도 꿈쩍않은 대장이 되셨는데

" 그려두 난 화장실에서 똥 누느게 아즉 죽을려면 멀은 거여?"

무슨 소리냐구 여쭤보니 침대마다 꼼짝없이 기저귀에 싸대는 사람보다 낫다는 애기라고 이것도 감사한 것이라고 하신다. 어찌보면 치매환자가 아니시고 어느 선사님 말씀을 듣고 배우신 건지 우리도 할말을 딱 못하게 한다. 사실 맞는 이치다.

화장실에 오시면 이왕에 거울도 보시고 당신 손수 빗질도 하시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허리가 딱 90도로 반은 접은 상태이시니 거울이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다. 당신 키가 작은 것을 탓만 하신다. 원무과에 전화로 작은 거울을 그 할머니 키 높이로 더 붙여 달라고 했더니 아주 위험한 일이란다. 간혹 가다가 당신 얼굴 마주하고 무지하게 싸우신단다. 

" 나를 쬐려보는 저  년이 누군 겨?"

그래서 치매병동엔 거울이 없다. 유리도 투명 프라스틱으로 만들어서 깨지지 않는 것으로 대체했다. 한 때 젊음을 보내고 늙어 여기로 올 줄 몰랐다고 한 숨과 탄회를 하시는  할아버지가 없어지셔서 온 병동을 찾아 헤맸는데, 어떻게 옥상에 올라가셨는지 물탱크를 두둘기면서 그러신다.

" 문열어 ! 아 왜 말이 없어? 엉?"

오로지 집으로 돌아가신다는 일념으로 그거 한 가지에만 매달려 아마 집에 있는 대문 색도 물탱크와 같은 은회색이였는지 그런 색만 보면 두둘기신다. 같은 행동을 매일 같이 똑같이 하신다. 힘이 좋으셔서 홈이 패일 정도다.

 

보호자들이 가끔 면회를 찾아 오시는데. 천연으로 늘 찾는 본능이 있으시니 니가 누구냐? 나 아냐? 밥 줘? 나 언제 데려 갈거여? 왜 여그에 버렸어? 이러신다.

한 환자보호자가 돌아 가면서 그러신다.

" 그래도 제가 여기에서 울 엄니 뵙구 집에 가야 맘이 편합니다.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자식인 제 대신 수고 많으십니다."

처음엔 죄책감에 시달려서 많이 미안하고 가족에겐 죄짓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하긴 어느 자식이 당신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놓고 마음이 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제가 건강해서 할 수 있을 때 울 엄니위해 늘 기도할겁니다. 당신 발로 당신이 걸어서 화장실 댕기게 해주시고 나를 보면 니가 누구여? 해도 저요 당신 둘째아들 원형이요? 저따라 해보셔유? 둘째 아들입니디 이렇게 큰 소리로 얼굴 부벼대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이제 철든 아들이라고 늘 엄니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데. 제가 오면 좀 시끄럽지요?"

 

평소에 늘 그렇게 당연하게 갖고 있었던 것들이 가장 염원히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얻어지는 것들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늦게 알아서 오히려 미안해진다고 그렇게 눈시울을 붉히고 다음에 또 올께요 하신다.

 

병원에 근무하기 전에 나도 늘 익숙한 일상을 갖고 당연한 것으로 착각을 했었다.

행복 하기 위해선 많은 조건을 갖춰야 이뤄지는 성공으로 생각 했었다. 행복 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고 그 만큼 비용이 값 비싼 줄 알았다. 많은 환자들을 대하고 난 다음에 그 전과 그후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에게 오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애씀을 보았다. 한 벌의 옷에도 내가 신는 구두 한 짝에도 하다못해 가늘은 이쑤시게도 전에는 멋있는 한 그루 나무 였을텐데. 너무 빨리 늙어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사람이 오래되어 비로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같이 살고 서로 다르더라도 배려 해야 하는 것을  늙어 가면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인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나보다 못하다고 못 배웠다고 가난하다고 멸시해서 무시당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 오히려 무시하는 쪽이 반드시 더디더라도 느리게 더욱 초라 해지는 것을 배웠다.

 

오늘은 가을이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서서히 올 것이다. 가고 오고 지나가는 것에 대한 지나친 서글픔으로 오늘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오늘은 최대로 즐겁고 고맙고 감사한 날로 기념 할 것이다. 지금 살아있으므로 , 살아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