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세벽 세시에 일어나고 누군 밤 새도록 글을 쓴다거나 행동 반경에 따른 변화를 재촉하는 아침형인간이 아무리 일찍 성공한다고 꼬셔도 나는 아무래도 저녁형이다. 체질이
시골에서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무슨 아줌마가 드라마도 못보고 그렇게 재밌다는 선덕여왕이니 사랑과 전쟁이니 그 상영시간에 나는 이미 꿈나라 간지 오래다. 하긴 아들이 나보고 그런 적은 있다. 아무리 유명한 탤런트가 엄마 옆에 서있어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 거라고 한다. 근디 난 솔직히 탤런트를 못 알아본다고 그것에 대한 자존심은 세울 수 없었다. 좀 창피하지만 그게 나한테는 뭐에 써먹을 데가 별로 없는 것 중의 하나다. 누구에게 나 누구 알고 있는디? 알고 있다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자신은 근처에 그림자처럼 붙은 존재로 역설하고 있는 것 같다. 좀 어려운 애기지만.
밤 아홉시만 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밥을 먹은데다 애구 졸려 하고 자러 가면 울 남편 아예 자리 깔아 준다.
" 마님 주무시지요?"
" 쿨~~"
한 이십년 같이 살다보니 둘의 잠버릇을 잘 안다. 자다가 잠꼬대를 하는데 맞장구를 쳐주면 잘도 대답 한단다. 언제는 옆 집에서 애호박을 따다 주었는데 그걸 놀러온 친구에게 주고 거짓말로 시집에게 줬다고 한 걸 들통 난적이 있었다. 어디 호박뿐이겠는가. 수박에 메론에 감자에 들고나는 그 온갖 것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니 남편은 아예 창고열쇠를 새로 맞춰 열쇠를 갖고 다닌다.
이젠 상황 봐 가면서 그 열쇠 어디갔나? 찾는 것보다 열쇠 들고다니는 남편을 살살 꼬신다.
" 자기야! 나 찹쌀 좀 꺼내 줘?"
" 왜? 이번에 어디에 퍼 줄려구?"
" 퍼주긴 어따 퍼 줘? 애들 해 줄려구 그러지?"
그래도 안 속는다. 하도 뻥을 쳐서 그렇다나.
그래도 그런 생물을 넘 오래두면 안된다고 글고 제 때에 해먹어야지 밥이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지 썩혀서 묵히면 누가 잘 했다고 박수쳐주냐? 이자가 생기냐? 쌀에 바그미만 득실득실하게 생긴다고 하면 창고문을 열어 준다.
얼마전에 우리 밭에서 더덕을 캐서 큰 것은 아예 통 째로 술을 담근게 보인다.
흠. 저것도 좀 있으면 맛있게 익을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 펄쩍 뛴다.
" 그거 아부지 거여. 감히 먹을 생각 말라고!"
아무리 그렇게 말하면 주인은 따로 잇는 법이다. 마시는 사람이 임자다.
더덕주 마셔서 더욱 몸도 튼튼하고 건강한 며느리가 되겠다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원.
찹쌀을 내오고 콩을 내오고 또 뭔가 눈에 뛴다.
작년에 말려둔 옥수수. 아! 이걸로 강냉이 튀겨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고 한 자루 내 왔더니
" 야! 니 그 많은 걸 다 튀겨서 또 누굴 퍼 줄려구?"
뻥튀기는 진짜 엄청나게 부풀어 한 자루가 아니고 몇 자루일텐데.
남편 말듣고 나는 슬쩍 몇 개의 옥수수만 뺐다.
그랬더니 그 몇개만 해도 애들 한 참 먹는단다.
아무튼 오늘 창고는 순찰만 한 것으로 만족해야지.
밤에 잠만 덜 자면 내가 창고열쇠를 어떻게 인수를 할 수 있었는데. 해만 지면 졸리니 난 틀림없이 저녁형이다. 체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