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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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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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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류


BY 천정자 2009-07-17

" 니 남편 영양실조 걸리면 넌 좋냐?"
" 아니~~" 나는 별로 심각하지 않게 대답을 한다.
" 근디 반찬이 왜 노상 부실혀?" 남편은 고성방가로 눈도 부리부리하게 크게 뜬다.

상대에게 우선 위화감을 주려는 조폭같이.
" 돈만 줘. 까짓거 그런 건 금방 해결 혀!"
내가 어디서 집어오냐? 얻어오냐?

누구  걸 훔쳐다 반찬을 해주냐?

 다 그 돈만 주면 덤으로도 막 집어주더라!
후후..이 싸움은  신혼 때 싸우면서 다툰 대화다.

기선 제압이라고 먼저 깃발 잡자고 으르렁 대 던 시절에 나는 너무 잘 따지고 말 잘하고

남편은 젊어 혈기 왕성한 때였다.

결혼한 지 이 십년을 바라보는 요즘은 이렇게 싸운다.
" 요즘 새우젓이 젤 맛있게 익는디.." 남편이 말끝이 흐리다.
나의 대답은  속으로 그런다. 뭘 어쩌라고?
" 조개젓이 갑자기 먹고싶다!" 남편이 그러면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먹고싶은 사람이 사오든지 어디서 얻어 오든지 자기 맘대로 하든가 말든가!

말 없는 싸움은 별 시끄럽지 않다.

이길려고 눈 크게 뜨고 목소리 키울 필요 없으니 아주 간단하다.
남편은 나의 묵묵부답을 이미 알아듣는다.
꼬깃꼬깃 주머니에서 돈 삼 만원 준다.
" 고등어도 꽁치도 사와라. 또 삥치지말고."

헤헤헤..내가 언제 돈  달라고 했나?
" 그럴 것 없네, 뭘 다 걱정해 준다구 애쓰지 말고 직접 가서 사오셔유?

거기다가 보탤 돈은 난 없어유."

돈이 모지라다고 말 할 것도 없다.

남편은  머뭇머뭇하더니 또 다른 주머니에서 이 만원이 나온다. 비상금이란다. 누가 더 달라고 물어봤나?

남편은 술값은 펑펑 나가도 반찬값은 그냥 주면 돈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한다.

어차피 자신이 먹을 건데 담배도 술도 자신이 다 먹을 건데.
이제야 터득한 남편들의 결혼 생활 세계인데, 시시하고 소소한 지출은 돈으로 내보내는 것이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경향이 진하다.특히 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 사소한 것 들을 더 무시한다.
그래서 나도 그 시시한 생각들에 대한 반항을 했다.
반찬이 떨어져서 상에 놓은 반찬이 없을 때까지 버틴다.

맛이 없다고 해도 난 나혼자 먹어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반찬통을 다 비워서 새로운 반찬으로 채울때 까지.
진짜 김치 한 가지에 밥 한 공기놓고 먹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을 무시한다고 길길이 성화다.
나는 처음에 그 성화통에 부랴부랴 오늘은 무슨반찬을 할까 궁지에 몰리는 궁리도 했었는데.
나중엔 이판사판 개판이다, 빚 내가면서 체면치레로 늘비하게 차려지는 밥상 때문에 우리집 빚구덩이로 몰리기 딱 맞춤이다.그래서 없으면 없는데로 있으면 좀 아껴 가면서 살자고 했다. 

될 수 있음 근처 텃밭에 자주 들락날락하고, 남편도 아내인 내가 하도 안해주니 자구책인지 본인이 스스로 부식거리를 구해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찬값은 담배값보다 더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와 사는 동안 나도 많은 것이 변화되고 바뀌고 닮아가는 모양이다.
" 그니께 고등어 한 손에 오 천원, 꽁치는 네 마리에 삼 천원이래! 근디 자기 담배 한 갑은 이천 오백원이구."
나도 푸른 지폐 만원 한 장들고 콩콩히 따지니까
" 알았어 알았어! 얼마 더주면 되는 거여?" 남편이 신경질낸다.
" 누가 더 달래? 먹을 사람이 직접 사 오라구. 또 돈 줬다구 생색이나 내지말고."

결혼생활을 이 십년동안 하다보니 이젠 서로 간의 대답이 훤하다.  



요즘은 내가 잔소리 같이 얘길 안 해도 텔레비전에서 동네사람들까지 모두 이구동성이다.

물가가 얼마나 오른 줄 아냐고, 그래선가, 가스비가 기름값이 요즘 얼마나 되냐고 나보고 알아보란다.

"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은 디..담배값은 또 언제 오르나 그런 것만 궁금하지?"  

남편보고 돈 벌어 오라고 많이 벌어 오라고 안 할테니 지금 있는거나 어떻게 잘 아껴 쓸 궁리나 해두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내가 아직 이혼을 고려 중인 것은 그래도 이 만큼이라도 대화로 소통할 수 있게 한 그 세월이 무시할 수 없었다.남자 제대로 어디서 공부한 적 없이 잘 모르고 한 결혼인데 그게 그렇게 들인 시간이 엄청 아깝다. 그래도 이제서야 조금  안다면 누구보다 오랫동안 같이 산 남편인데.
아직 나는 시집과의 원만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큰며느리다.

아마 대화가 될 때까지 아직 이혼은 보류다.
비록 오래 걸릴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