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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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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리는 날


BY 천정자 2008-02-13

" 야야...느그이모가 이상하다..."

" 왜? 엄마?"

" 의사가 뭐라고 하는 디 무슨소리인지 모르겄다아..."

" 뭐?"

 

작년 봄에 유방암 수술한다고 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이미 꿈을 해몽하기 전이었다.

자꾸 엄마는 무슨보자기를 싸고 막내이모는 끌어 댕기고, 자세히 보니 이모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꿈에서도 이모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눈꺼풀도 퇴화가 되어 뜨지도 못하게 딱풀로 붙인 것처럼 그렇게

맹인으로 우두커니 아이업고 보따리를 안고 선 모습을 꿈에 본 날 아침에나에게 연락이 왔다.

 

이른 새벽에 혼자 눈뜨고 혼자 밥 해먹는 세월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 덜컥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조카인 나에게 알려준 울 엄마나 울 이모는 가족이 모두 뿔뿔히 흩어진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야 되나..이런 말하면 더욱 속상하고 초라한나의 외갓집의 가계도다.

 

뭐하나 뼈대있게 출세한 사람 한사람도 없는 집안이었다. 외삼춘도 이모도 모두 어디에서 변변하게 사는 게 젤 큰 성공이었다.

그렇다고 돈이나 많은 집안이면 그럴 듯하게 말하긴 하지만. 돈없고 빽없고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있다고 하면 지지리도 못 살때 울엄마 치마잡고 잘 걷지도 못한 걸음으로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단칸방에서 몸부비며 벽을 짚고 턱을 넘어 연탄불 아궁이에서 조카인

우리들에게 밥을 해주던 막내이모는 참 착하셨다.

 

앞이 안보인다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우리생각과는 정반대였다.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다 헤어진 내의를 꿰메고. 방실 방실 웃으면서 내 머리 빗겨주며 해 주던 옛날애기에 니 외할아버지가 첫 외손주라고 박하사탕 사준 애기며. 목화꽃을 그렇게 좋아해서 외삼춘이 한아름 따 준 애기며. 옻나무에 타서 긁고 앉아 있는 나를 이모가 계란노른자로 덕지덕지 발라 준 그 애기들을 들으면서  같이 살았다. 

 

엄마는 앞이 안보여도 글자는 배워야 한다면서 맹인학교에 나이가 서른이 넘은 이모를 맹학교에 입학을 시킨 후 돌아온 날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켁켁대고 꺼이꺼이 울으셨다. 부모복도 지지리도 못 만나더니..형제도 복이 지지리도 없는 년이라고 했다.그 때 그 아픈 애길 하셨다. 나이가 열 일곱살 때 외할아버지가 남의 집 첩도 아닌 씨받이로 보내더니 그 값을 외할아버지 노름빚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면서 내 귀에 고함지르듯이 죽어서도  너희 외할아버지는 눈 고히 못 감았을거라고 또 가슴치면서 울으셨다.

 

막내 이모는 맹학교에서 글자도 배웠지만 안마도 배웠다. 졸업을 하면 안마사로 나간다고 울 집에 와서 헤헤웃으시면서 말씀하기도 했다. 아마 그 때 이모가 나를 잡고 실습을 한다고 발만지고 어깨를 짚어주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산 세월에 이 십년이 지난 지금에 막내이모가 덜컥 암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날부터 그 후엔 툭하면 나 언제오냐고 조카인 나를 찾아 댄다고 얼른 오란다.다급하다.울 엄마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가려니 아침부터 꾸물대던 날씨가 진눈깨비인지 눈인지 비인지 오락가락 싱숭생숭하다.

이모는 눈이 하얗다는 것을 모른다. 물론 색을 모른다. 꿈도 목소리로 꾼단다. 이건 누구 목소리인데..

언젠가 꿈에서 내가 그러더란다.

" 이모 이모방엔 왜 거울이 없어?"

본인의 얼굴을 한 번도 거울로 본 적이 없는 울 이모한테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꿈에서 보였다고 하지 않으신다. 네가 꿈에 들렸다고 지나갔다고 꿈 꾸는 애길 하실 때..그 먹먹함이 나도 짐작 못할 무채색으로 목구멍이 콱 막혔다.

 

차에 시동을 걸고 라디오에선 어디는 눈이 많이내려 교통길이 혼잡합니다..여행이 있으시다면 잠시 미루시고  단단한 준비를 하시고 운행을 하시길 바란다고 낭랑한 어나운서의 목소리가 상냥하다.

나의 막내이모가 있는 곳엔 지금 폭설이 내리고 있단다.

 

찬 눈이라고 시럽다고 해도 창문열어 자꾸 손을 내밀어 눈 맞이하던  이모에게 오늘 가장 큰 눈으로 배웅을 해 주려나 보다.느린 걸음같이 흩날리는 눈쌓인 도로에서 나도 달리기 시작햇다. 나의 막내이모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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