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훈이 뭐여? 엄마?
딸내미가 숙제라고 디민 공책에 우리집 가훈이라는 빈칸이 큼직막하게 비어 있었다.
재작년에도 아들이 물어보던 가훈인데
그 땐 뭐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 가훈이 도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 까먹었는 디..."
" 엄마는 가훈도 군것질이여? 까먹 게?"
히히 그러네... 그런데 해마다 숙제라고 내주는 그 가훈은 사실은 벽걸이용 서예도 아닌데
잊어먹지않게 어디에다 메모라도 해둘 걸 그랬나보다 했더니 말이 되게 어렵단다.
어렵지.. 그 가훈이 얼마나 사람을 어렵게 하는데.
하긴 어디는 하면 한다라든가. 근검하고 성실하게 이런 거는 대문짝만하게 표어를 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집도 여럿 봤다. 그래서 나도 그 가훈을 고민했는데.
울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니 마음데로 살아라! 라고 하더니 골치가 아프단다. 갑자기...
그 놈의 가훈 애기만 나오면 연신 담배만 더 피운다.
사회가 더욱 복잡하게 변하는 게 아니고 우리들이 더욱 복잡한 관계로 바뀌었으니 가훈도 일률적으로 교훈 베끼기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할 수없이 가훈을 정해야 하니 나는 딸내미와 마주 앉고 잔머리를 굴 릴 수 밖에.
어떤거로 할까.
딸내미가 못하는 게 화장실에서 똥싸고 물을 잘 안내리니까. 화장실 벽에 붙여놓는 가훈은
물 꼭 잘내리기!
아니면 엄마 몰래 지갑에서 천원짜리 슬쩍 잘 가져가니까 엄마 지갑에서 돈 가져가지 않기!
아직 시간을 잘 못읽으니까 사발시계 일부터 열둘까지 매일 외워보기!
...
,,,
뭐 이런 것을 적어 나가니까 딸내미가 기도 안차나 엄마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 내가 언제 천원짜리 가져가는 것 봤어? 응 ! 분명히 봤는데?
그럼 왜 그 때 혼내지 지금 애기하는 거야?
그 때 너보고 혼내면 뭐하냐? 엄마가 없을 때 또 가져갈 거 아녀?
그리고 또 있는디..
또 뭐? 무슨 가훈이 이렇게 길어? 칸이 좁아? 엄마!
우리 영은이가 살이 조금 만 더 빠질려면 엄마 몰래 과자 사탕 덜 사먹기!
그리고 마당에서 심심할 때 줄넘기 열번씩 뜀뛰기!
지나가다 울 남편이 들여다 보더니 그런 가훈이라면 할 게 많단다.
나보고 그런다. 마누라 하루에 한 번 설겆이 꼭 하기! 저녁무렵에 빨래 잘 겆어오기 등등..
딸내미가 배꼽빠지게 웃는다.
가훈이 뭐 별게냐?
그냥 우리 사는데 조금 간간하게 양념역활을 하면 그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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