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고 방송국은 난리가 났다고 특보를 낸다.
여기 저기에서 아우성이다.
어디는 잠기고, 어디는 휩쓸려가고 어디는 떠나가고 그렇다고
잘 붙들어 매라고 난리다.
늘 우리는 태풍에 시달리면서 이번 만큼은 용케 잘 피하여 잘 살자고 한다.
바람은 그런 거는 잘 모른다고 여기저기 잘도 쏘다닌다.
우르르 함꺼번에 몰아치는 힘은 그동안 잘 버텨오던 나무뿌리도
송두리째 뽑혀 버린다.
우리집 차양도 벌써 날아가서 마당에 굴러다니고, 무쇠로 만든 대문도 쓰러졌다.
겨우내 보온막을 해줘서 고맙던 비닐도 너덜 너덜 찢어져 펄럭거리는 소리도 지저분하게 들린다. 고개를 세우던 상추고동도 모가지가 댕겅 댕겅 바람에 잘리고, 낮게 포복을 하던 풀들도 물에 반쯤 잠겨 버렸다.
그런데도 바람은 성이 차지 않았나 웅웅거리는 소리로 온톤 동네를 뒤숭숭하게 민들었다.
바깥에 눈빛을 두고도 내내 방안에서 안절부절이다. 남편은.
어이구..이럴 줄 알았으면 논에 물좀 빼놓을 걸... 이 바람에 볏모가지가 잘 견뎌야 되는디...
영천이네 하우스는 괜찮은 가 몰러... 뭔 바람이 지랄을 징하게 하네...
날만 개이기만 하면 얼른 튀어나 갈 자세다. 혹시 잔비가 내릴 지 모르니 모자도 우비도 자전거에 실어 놓고 내내 하늘만 올려다 본다.
엊그제 집 나가서 한 참 찾아 다녔던 순님이도 개집에서 영 나오지 않는다. 심란한가 보다.
야야.. 정구지 넣고 부침개나 해봐라... 비오니 가슴이 또 우울해지나. 만만하면 부침게를 해달란다. 난 금방 바람에 툭 털어진 주먹만한 애호박에 한주먹 부추를 썩둑 잘라 총총 썰어서
부침개 한장 구워 먹고 두장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 또 구워먹고.
그러다보니 졸립다. 오후는 바람에 실어가던지 말던지 눈꺼풀은 무겁다. 술기운은 내 몸에 젖어 들어 꿈같은 여름을 태풍으로 보내고 그러는 가 보다.
깨어보니 하늘이 개었다. 반짝 햇빛도 보인다. 부리나케 슬립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가보니 태풍이 지나갔는데 아직 떠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온 동네 꽃 향기로 물씬거리게 들썩 들썩 하게 만들었으니 도대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 봐야 되나?
정신 못차리게 혼미하게 만들어 오락가락 하게 만들면 태풍을 욕하지 말라고 한 일이 틀림없다. 분명히 남쪽에서 이제 막 핀 어느 이름모를 꽃들의 말들을 태풍에 실어 보냈을 테인데.
한 여름의 태풍은 욕 먹을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댄 것이다.
그나저나 이 꽃향기는 뭐라고 번역을 해줘야 되나.
"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그러면 들립니다. 제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