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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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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사는 뱀


BY 천정자 2006-05-25

이사올 땐 같이 온 적이 없는 식구들이 우리집에 살고 있다.

전에 살던 주인은 집 뒷뜰 장독대 근처에 찔레?育見? 흰무궁화며, 감나무를 심어

뒷담을 만들어 울타리가 되게 했다.

 

사실 이 집은 사려고 한 집이 아니었다.

집 욕심이 없는 나는 여기저기 유랑 하듯이  옮겨 다니는 것이 귀찮치는 않았다.

아마 젊어서 그랬을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 마루다.

요즘은 마루가 있는 집이 한옥 아니면 보기 힘들다.

거기에다가  널찍한 마당에 평상이 있는 것과

손바닥만한 뙈기밭이 딱 안성마춤으로 되어 있었다.

 

난 두말 없이 계약해버리고 하룻만에 이사 온 집이다.

그렇게 팔 년을 사는 동안 난 무심했다.

 

매일 얼마나 돈을 벌까.

얼마나 많이 모을까.적금타면 뭐할까 저궁리 이궁리에 시달리다보니 정작 우리 집에 관해선 다 아는 애기가 된 것처럼

그렇게 간주 해 버렷다.

 

이미 다 아는 애기는 또 들은 듯 새로운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 늦은 밤까지 비가 마구 쏟아지고 난 천천히 주행을 하고 있는데

도로에서 뭔가 기인 게 헤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도 도로에서 깔리고 치이고 하는 야생동물이 많기에 난 긴장했다.

그 뱀이 지나가는 동안 잠시 멈췄는데

우리집 허물어진 담을 타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이거 필시 우리집에 뱀굴이 있을까 싶었다.

하긴 흙집이니 어디이든 물렁해진데 또아리를 틀어 비만 피해가고 쉬었다가  가면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그 이후 난 돈을 벌러 다니느라 우리집에 들어간 뱀은 까먹었다.

아침에 애들 학교보내고 잠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뒷문을 활짝 열러 제쳤다.

정면으로 찔레꽃이 한 참 피워대는 향기가 무진장 뿜어대고 있었다.

전 주인이 버려두고 간 장독대엔 빈 항아리에 뚝배기가 그대로 포개져 있다.

얼마 전 남편이 감자를 몇 개 심었나 희게 감자꽃이 피고

유심히 난 풀섶에 혹시 개구리라도 길을 내고 있을까 들여다 보았다.

 

순간  한 풀자락이 심하게 요동을 친다.

옳거니 저 밑에 누가 사나보다. 눈빛 반짝거리며 쳐다보는데.

흔들리는 풀이 한꺼번에 면적이 넓었다.

난 두꺼비가 지나가나. 요리저리 뒤져보니 꽃뱀이 보였다.

붉은 점을 처음부터 꼬리까지 치장한 꽃 뱀이었다.

나도 아침에 뭐 할일이 없어서 너를 보러 나왔지만

그 뱀은 나에겐 관심이 없는 듯 부지런히 이 가지에  저 가지에 넘나들고 있었다.

 

천경자화가가 그린  꼭 그 뱀같았다.

머리에 이고 있는 뱀머리만큼 영롱하게 눈도 잘생겼다.

난 왜 이 가지에 저 가지에 힘들게 쏘다니나 했더니 청개구리가 가지끝에 숨어 앉아있는 것을  냄새로 부지런히 ?고 있었다. 

 

결국에 순식간에 청개구리가 뱀의 입에 걸렸다. 아침식사인가 보다.

푸른 청개구리는 내가 푸른 청상추먹듯이 뱀은 그렇게 꿀꺽 삼키고 있었다.

한 일년 더 살은 날씬한 몸매인데.

 

난 다시 뒷문을 닫았다.언젠가 나 자는 방에 오도가도 못하는 생앙쥐가 생각난다.

요즘은 천장이 조용하다고 했더니 고양이가 다 물어갔을 거라고 남편은 아무렇지않게  대답했다.

혹시 저 뱀도 고양이한테 잡히면 어쩌나...

우리집에서 사는 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