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침대의 광고를 보면 꼭 어릴 적 내가 생각난다.
제발 한 남자를 허락해 달라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침대에서
자기 전 기도를 하니 하늘에서 벼락같이 뚝 떨어진 남자의 황당한 얼굴을 보면
난 그 남자가 생각난다.
하긴 난 부모님의 은혜로 사지육신 멀쩡하게 갖고 태어난 것도 감지덕지인데.
내손가락의 개성적인 지문같은 표정의 얼굴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시대가 멀티미디어를 지향하고 오디오보다 비디오가 더욱 각광 받았던 그 시대에
나는 그 흔한 소개팅이니, 미팅이니에선 우선 제외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천만 다행이지.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그말이 참말 맞는 애기다.
문제는 그 당시엔 펜팔이라는 게 아주 발달되어 이름 예쁘게 가명으로 올려 주고 받는 편지를 지금의 메일로 아이디 주고 받는 형태와 아주 흡사하다.
비록 우체국에서 한 삼일만에 도착하면 답장이 언제올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발 우체국 드나들던 그 때에 나는 아주 바뻤다. 연애편지 대필 해주느라고.
한 친구는 아예 주소도 우리집으로 바꿔 대놓고 주고 받으니. 그 당시 무슨 작가처럼 줄 창 써대니 그렇게 써먹어도 들킬 염려없는 것 들이었다.
이름도 가미희, 은지. 희야... 정신이 없어 뒤바뀐 편지를 보내 친구한테 혼줄 난 것도 몇 번 있었는데, 이상했다. 한 편지가 나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글을 참 잘쓴다니, 마음이 아름답다니. 그래서 모습이 아름다울 거라고 하더니 급기야 만나자고 제안이 온 것이다. 주소를 보니 전라도 맨 끝이다. 친구의 대필이니 나도 겁도 없이 만나자고 해놓고 원래 펜팔주인보고 나가라고 하면 난 임무 끝이니.. 그렇게 친구가 나갔는데.
어정쩡하니 만나고 난 후 이젠 편지를 보내지도 말고 만나지도 않을 거라고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당시엔 그 친구의 책임이지, 절대 내 책임이 아니니 별 신경을 안썼는데. 몇 칠후 그동안 내가 대필했던 편지들이 몽땅 소포로 되돌아 온 것이다.
신경질이 났다. 싫으면 그만이지 뭐 이런게 다아 있냐고 친구한테 난 그 편지들을 들고 따지니까 태워버린란다. 그래서 난 그편지를 태울려고 옥상에서 준비하다 한 장 한 장 검열 하듯이 읽어보다 깜짝 놀랐다. 그 편지들 맨 끝에 덧글로 쓰여 있는 나의 필체가 아닌 글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참 고맙습니다. 이렇게 답장을 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한 뭉텅이 편지에 일일히 그렇게 답장이 있었다.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충 유희적인 상투적인 연애편지 대필 해준 것 뿐인데.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퍼뜩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왜 편지를 보내지도 말라고 했는지.. 그제야 그 친구가 대답을 한다.
그 편지 내가 쓴 것이고, 사람을 만나보니 그 편지 쓴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애기했더니, 기분이 나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다시는 장난하지 말라고. 그리고 대학생이었다고 했다.
그 때 내 나이 열 일곱이고, 철이나 마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 철부지였는데..
그래서 난 이유를 알고 난 후 내 편지를 옥상에서 태웠다. 하얀 연기가 한 참 모락모락 올랐다.
일년이 지났으니 고삼이라고 공부한다고 무슨 연애편지 대필 의뢰도 없었고, 나 또한 별 뜻을 두지 않았는데 가을에 국화가 그려진 예쁜 편지지에 남자가 썼다고 할 수 없는 이쁜 글씨로 꾸민 편지가 날아 온 것이다.
누군지도 까먹었으니 답장도 당연히 못했다. 그렇게 일년에 가을만 되면 오는 국화꽃편지가
날아왔다. 졸업을 해도 몇 년이 지났는데, 이거 가을만 되면 그 편지가 부담스러웠다. 답장을 해주고 싶어도 수신자 이름만 있을 뿐 주소는 없다. 돌려 보내려고 해도 대책이 없었다.
할 수없지... 언젠가는 찾아오던가 내 얼굴 알면 오라고 사정을 해도 안 올텐데.. 뭐.
생각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진짜로 우리집을 찾아왔다. 달랑 내 주소에 내친구 이름을 들고 말이다. 때는 엄마가 자급하라고 하던 스물일곱의 나이에 늦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