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 주위에 쌓여가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없는 것은 없다고 안 보여 모르지만, 있는 것을 뒤적거려 정리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나는 청소를 잘 하지 못한다.
천성이 워낙 털털해서 어제 청소했으면 한 일주일은 괜 찮을 것 같은데
같이 사는 사람은 늘 내 대신 걸레를 들고 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다녔다.
무슨 여자가 살림도 제대로 못 배워가지고 시집을 겁없이 오냐?
반찬은 맛대가리 없이 만드는 대회를 나가면 우승감이다.
니 세탁기는 돌릴 줄 아냐?
마당은 멸 번 쓸어봤냐?
그 잔소리에 일일히 맞대답도 늘 똑같다.
난 시집을 온게 아니고 결혼을 한것이고, 조미료 빼면 다아 맛은 없는거고
세탁기는 손세탁으로 모두 통일이 젤이고,
마당은 바람부는 날 잘 알아서 잘 쓸어가고...
이렇게 부딪히는 소리에 익숙해졌나 그 말에 그 대답에 그 시간에 지내온 것들이
벌써 십칠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엌살림이라고 해보았자 냄비며 주방기구며, 접시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심심해서 하나씩 들춰보며 옛날 이야기를 들춰보며 세어보니 수십가지나 된다.
기계를 싫어하는 편이라 가전제품이라면 냉장고 한대인데. 그 옆에 믹서기. 그 앞에 십년 된 카세트겸 라디오 한대, 이래저래 나의 손길에 그래도 무던히도 버티고 있는 나의 물건들이다.
무엇을 받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누가 선물이라도 준다고 하면 기겁을 한다.
늘어놓고, 아니면 쌓아놓고 아직 쓰지 못하는 살림을 보면 심란하다.
그래서 심란한 마음 얼른 버리듯 누가 지나가다 우리집 들리면 얼른 집어주고 나눠주고
그렇게 하다 남편에게 들켜 혼나가면서도 그렇게 부지런히 치웠건만
우리집 창고엔 그 만큼 더 쌓여있다.
남편은 그런다. 다아 필요한 거고 사용하라고 만든 물건들이니 절대 누구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남들은 다 갖춰서 살아도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마누라는 갖다 주기 바쁘다고 도둑보다 더 무섭단다.
그럼에도 난 내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고장이 난 테레비만 창고로 옮기면 딱 좋겠구만, 남편은 극구 반대이다.
남들이 오면 창피하단다.
하긴 안방에 제대로 된 가전제품이라면 먹통이 된 테레비 하나다.
누가 진공청소기를 줬다고 그 고장난 테레비 옆에 떡하니 서 있다.
그것도 남 주지 말라고 또 신신 당부다. 안그러면 나보고 걸레질하고 방 쓸란다.
나도 두번 생각않고 이제부터 내가 청소기 마누라 할 테니 당장 도로 갖다 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래 같이산 마누라 성질 건드려 보았자 또 심란한 거 잘 안다. 남편은...
결국 진공 청소기는 창고로 실려갔다.
난 걸레를 빨고 내 방을 닦았다. 비록 청소는 잘 배우지 못해도 내가 잠잔 자리. 내가 앉았던 자리, 앞으로도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내 손으로 청소하는 것이 더욱 떳떳하다.
나의 방엔 있는 거라 곤 무릎이 나온 청색츄리닝 바지. 엊그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장날 사진집 한 권, 너저분하게 널브러진 딸내미 교과서 몇 권. 한쪽이 무너지기 직전인 책꽃이. 시아버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앉은뱅이 책상. 그 위에 요지며, 이쑤시게 한 통. 그리고 손톱깍이가 덜렁 누워있다.
거울은 누가 망했다고 준 거울. 그 걸 깨뜨려 버린다는걸 난 바득 바득 우겨 한쪽 벽 정중앙에 신주 모시듯이 달았다.성질 참 못됬다고 남편은 그런다.
그려... 이제 알았남? 성질 디게 모질고 못되먹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