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가 삼십오만을 질주하고 있다.
내 차의 미터기에 거리를 가늠하다보면 어지간히 쏘다닌 거리다.
이차에 저차에 들이박히고 긁히고 차가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잘도 씽씽 달리더니 요즘은 잘 달리다가 힘빠지는 모양으로
시름이 시동이 꺼진다.
남편은 그렇게 고생시키고 부려먹더니 이젠 그런 차례가 온 것이라고
당장 폐차하자고 다그친다.
내가 보기엔 아직 엔진소리로 보아 한 일이년은 더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골로 가는 카쎈타에 데리고 가보니 기화기라고 그게 노화가 되어 부속을 갈아 주어야 한단다. 나의 차 모델은 이미 중지된 구식이라 주문해야 낼모레 쯤 고칠 수 있다는데.
이거 또 주행하다 시동꺼지면 또 뒤에서 받치면 어쩌나 하니.
그냥 놔두고 키를 두고 가란다.
키를 주고 공장에서 걸어나오다 보니 그 근처에 시속 칠팔십의 속도에 휙휙 날려보낸 봄풍경이 나의 걸음속도에 맞춰 따라온다.
경지정리하느라 논둑에서 피워져 있을 자운영꽃이 흐드러지게 가로지르는 댐둑의 땅바닥을 덮어 가고 있었다.
가을하늘색을 꼭 빼닮은 꽃이 쥐눈이콩 만큼의 꽃잎들이 노오란 민들레옆에서 보색대비를 하듯 더욱 짙게 보인다.
구두를 신어 얼마 걷지 못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야 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내 눈 앞이 휘청거린다. 배추 흰나비떼들이 자운영에 비닐하우스안에서 피우는 딸기꽃에, 미나리옆에서 높게 피운 유채꽃에 달라붙은 것이지. 꽃잎인지 분간을 못하게 여기저기 바람에 실려 다니는데...
구두도 벗고 양말을 신은 발로 농로를 따라 걸어 보자...
까짓 거 그렇게 걸어도 누가 시비를 걸지 않을테니... 누가 말 걸으면 그냥 걸어보는 거예유..
이러면 되고, 그러고 보니 자동차의 속도에 못 보고 지나친 그 많은 풍경을 오롯히 그 자리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인도에 보도블럭까지 걸어서 오다보니 보도블럭틈에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자전거에 짓눌려 모가지가 질끈 눌렸나 아예 땅바닥에 기어서 노랗게 살아난 끈질긴 노력에
한 참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이렇게도 사는구나. 너희들은.
뿌리에 날개를 달지 않았을테고. 자동차처럼 빠른 속도를 갖지 못해도.
지나가는 발에 밟혀 형편없는 몰골이라도 그냥 살아보는 구나...
언제부턴가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을 읽고 싶었다.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를 가진 그 바람을
너희들의 바램이 바람으로 여기저기 떠 돌아다니는 것을 나는 궁금해졌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같다.
걸어서 너희를 만나야 한다는 것.
서로의 어느만치 간격을 두고 있는 거리만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늦게서야 도착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