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고 싶어...
아니 그거말고 뜨거운 거 없어?
수박이 아직 안 익었을까?
밥맛이 왜 이래?
맛 없어!
일으켜 줘!
오늘 오지마!
내일은 혼자 있을거야!
,
,
듣는 남편은 말을 하지 못하나 보다.
혹시 말 못하는 농아인?
난 그런가 보다 했다.
그 아줌마의 신세한탄을 듣기 전까지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자
막내이모 침대에 아예 자리를 옮겨 앉았다.
바람만 피우면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봐준다...
지마누라 세가 빠지게 돈벌어 오면
그 돈으로 노름하다 버린 돈도 집 몇채란다.
남에게 돈 빌려 노름하다 빚진거 갚아주다
언제 거울보니 이 여자가 누군가 했더니 나더라...
시상에 내가 미친다 미친다 했더니
육십바라보는 늙은여자만 되었다나.
거기다 첩까지 있는 줄 모르고 있다가
돈 안주니까 생활비 달라고 나를 ?아 왔을 때
첩년 보는데서 본처를 패서 병원에 실려 가게 한 남편이라고.
거기에다 시어머니는 더하면 더하지 덜 하지도 않고
이러다 병이 나버렸는데..
몇칠 동안 열이 안내리는 거여...
이러다 죽으면 딱 맞다 싶은데
하나 있는 아들이 나를 업어서 병원에 입원시켰다는 데
눈 떠 보니 열흘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거여..
그 때 가버려야 저 화상을 안 보고 가는 건디..
그게 소원이라면 최고인디...
연세를 보니 남편은 칠십대.
아내는 육십대.
아들은 삼십대.
매번 남편이 점심이고 저녁이고 손수 밥을 해 온단다.
병원에서 나온 밥은 맛이 없다고 하니까 그 다음부터 국도 반찬도 모두 손수 해온단다.
아들은 간식을 나르고 옆에서 책 읽어주고 그러면 연신 웃으시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아수라 백작 옆 얼굴이 된다.
그래도 남편은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한다.
하필이면 나의 막내이모 침대가 정면으로 있어
나도 이모도 무슨 연극배우들을 보는 것처럼 된다.
맹인이모는 소리만 듣지,
난 생생한 광경을 목도하는 것이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동안 아내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모두 빼고
못 할짓만 골라서 다 해버린 남편이라고.
지금은 살아 있어서 할 수없이 얼굴 보지만
저승가면 그림자라도 마주치지 말자고 했다고 한단다.
막내이모는 듣기만 한 남의 애기인데
눈에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옆에 있는 나는 두루마기 휴지를 들고 있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병원주위엔 온통 소나무에 잣나무에 뒤덮힌 야산이 있는데
두루미, 까치, 참새, 다람쥐들이 수시로 날아다니며 새둥지를 짓고 있었다.
사층높이로 키가 큰 나무가지 숲사이로 두마리가 어울리며
나뭇가지를 입으로 물어다 집짓는 게 아주 잘 보였다.
난 새둥지를 짓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저 둥지의 디자인을 남편이 했을까. 아니면 아내가 했을까.
재두루미는 서로 입으로 부딪히며 물어다주는 것을 한 쪽에선 지켜주고,
한쪽에선 흙으로 뭉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하도 열심히보고 이모에게 설명해주니
그 소리를 듣던 그 아줌마가 아예 창밖에 있는 새들에게 다가간다.
어머나.. 어머나.. 재네들 나무에 집짓는 거 봐!
당신도 한 번도 못봤지?
처음으로 남편에게 말거는 대화다.
남편은 말없이 창문을 열어주었다.
키가 작아 잘 안보이다고 하니
덥석 허리를 안아준다.
보이니?
응! 세상에 흙으로 메꾸네...
남편의 다리가 휘청거린다.
아내는 모르나 연신 감탄이다.
그래도 놓지 않는다.
난 이모를 슬며시 끌고 복도로 나왔다.
아무래도 거기엔 두분만 있는 것이 잘 어울리신다.
꼭 재두루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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