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413

동의를 구하지 못한 글입니다.


BY 천정자 2006-03-03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는 목놓아 울었다.

울면서 말하는데 이 말이 말이 아니었다.

대충 뭉그러져 나오는 억울함이 뭉게지고 있었다.

 

이렇게 할 게 아닌디...

할 수없이 얘들아빠 감옥을 보내 놓고도

가슴이 불안해서 내가 못 살 것이여...

세상천지에 지 남편 감옥 보내놓고  마음편히 잠 잘 온 다는 년은

없을 것이여...

 

차라리 맞고 말 걸 그랬어...

어차피 또 나오면 나 죽인다고 또 쫒아 올텐디...

아이구 내팔자가 왜 이리 퍼진다냐..

내 전생에 그 놈하고 무신 웬수 져 가지고

이런 오진 웬병 걸린 거냐구..

으엉..으엉..

 

한 삼십분은 쉬고 또 신세 한탄하고 .

그러길 한 서너 시간은 지났다.

 

울지 말라고 한들 멈출 울음도 아니고

처음 만난 여자의 신세한탄하는 소리에 나도 기가 질려 버렸다.

어떻게 이 여자가 내 앞에서 울고 있을까..

나도 두번씩이나 남편고발한 여자인데,

가슴도 울리고 또 그 기억에 진저리가 쳐진다.

 

같이 온 영미엄마는 나를 잘 안다.

법무사를 찾아가 탄원서를 쓰려고 하니 한장당 십만원씩 달란다고 한다.

수중에 이만원 밖에 없고, 법무사는 그럼 돈 없으면 본인이 대충 써서 보내란다.

 

어이가 없는 것은 그 여자는 글을 모른단다.

아는 것은 본인 이름 석자일 뿐.

마찬가지로 영미엄마도 자기 말로는 도진 개진이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가 생각 나더란다.

 

동네에서 젤로 성질이 드러워서 지 남편 고발을 해도 당당하게 얼굴 내 놓고 돌아다니는 여자로 알고 있는 나다.

 

도와달란다. 인권인지 위원회인지에 진정서를 넣어 보라고 변호사가 그랬다는데.

난 도무지 앞뒤 없이 무작정 와서 울고불고 하는 난리통에 더 정신이 없었다.

 

그제서야 여자는 울음을 멈추었다.

조금 진정되었나 나를 그제야 처음 본 여자 앞에서 울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보고 미안하다고 한다.

 

난 자초지종을 물었다.그동안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났는 지...

 

물 한 컵을  다아 마시더니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도  여전히 집에 무조건 들어와 칼로 사람 죽인다고 협박을 하고 아이도 산으로 끌고가 같이 죽자고 협박을 해서 할 수없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더니 또 잡아 가더란다.

 

칼을 들었으니 살인 미수죄에 폭행전과가 또 가중되어 삼년을 구치소에 있는데, 얼마 안있으면 출소를 한단다. 문제는 그 동안  시집과의 결별로 아예 관계없이 살고 싶은데. 또 집으로 찾아와 또 그럴 가능성이 백프로란다.

 

하긴 이혼을 하여 남인데. 감정이 앞 선 폭력이 그런 걸 분간 해가면 한다면 뭐가 걱정일까 싶었다.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더니 아직 출소를 하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조치를 취해 줄 수가 없단다. 방법이 있다면 접근 금지명령이나 더 추가 한다면 모를까.

 

밤마다 꿈에서도 시달렸단다. 나 때문에 감옥갔다고 시어머니는  나쁜년이라고 전화하시고. 동네사람들은 내가 거짓으로 신고를 한 줄 안다고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무슨 탄원서를 보낼 거냐고 했더니 집에 얼씬도 하지 않고 각각 헤어졌으니 상관 없이 살고 싶은데. 남편이 이 마음을 알아줄지 모르겠다고  한숨이다.

 

난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전 보지도 못한 남자 인생이나, 처음 만나서 들은 애기나  간단하게 해석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틀 후에 오라고 했다.

내가 쓰긴 쓰는데, 읽어보고 더 넣을 말 있으면 넣고. 뺄 말이 있으면 빼서 인권위원회에 보내자고 했다.

 

탄원서 첫머리에 내 남편을 구치소에 데려 갔으면 제대로 사람으로 만들어 내 보내지, 출소하면 또 나한테 와서 폭력을 행사하면 시집과 국가에 손해 배상를 청구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

 

삼년동안 남편이 구치소에 가 있는 동안 국가는  우리를 내 팽개쳐 놓았다.

이젠 폭력을 당하고 사후처리로 남편을 고발하고 싶지 않고, 예방차원에서 남편에게 인권위원회가 다리가 되어 전처의 의사를 전달 해주길 바란다고 썼다.

 

그 여자는 내가 읽어 준 탄원서를 안고 또 울었다.

나도 그 자리에서 같이 울었다.

 

그렇게 보름후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인권위원회에 선 그러더린다. 왜 이제야 탄원을 했냐고.

 

그 말을 듣던 나는 그대로 전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왜 감옥 만 데려 가냐고..

그게 법이냐고.

 

남편도 사람인데 적절한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병원이라면 모를까.

 

 

 

 

 

덧) 어제 그녀와 단촐하게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젠 마음껏 웃습니다.

울지 않고... 남편도 조만간 만나기로 했답니다. 마음이 편안한가 봅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동의 없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