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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BY 천정자 2006-02-25

뉴스에서도 홍수니 경보니 그런말도 없었다.

오늘의 날씨에서도 비가 많이 올 것이니 그런 말이 없었다.

 

이사를 와보니 그것도 한달후에 냄새가 나서 알았다.

바로 옆에 있는 하천을.

 

장마가 막 시작 될 무렵 파리와 모기의 천국이었다.

밤에는 황소개구리가  밤새 도록 왕왕대었다.

 

제 정신이 붙어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지 했을텐데.

시집에서 쫒겨난 그 마당에 좋고 나쁨이 전혀 분간이 어려웠다.

 

그렇게 비가오는데 밤새도록 퍼 붓는데

동네방송에서 또 틀어 대었다.

얼른 근처 학교로 피난가라고.

 

가려고 해도 막막했다.

딸아이는 업어야 되고 큰 아이는 안아야 할 만큼

골목에 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해마다 겪어서인가 이미 집 비운지 하루가 지났고

우리집은 골목에서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방에 물이 들어오고 수영도 못하는 나는 그러다 죽나 보다 했다.

딸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고 눈부비며 자꾸 내다보는 다섯살 박이 아들은

비 마이와 비 마이와 이랬다.

 

내 유년엔 높은 달동네에서 살다보니 홍수는 테레비에서 만  나오는 줄 알았다.

아무리 많이 와도 그 높은 동네까지 차오르지 않으니 내 생전엔 이런일은 겪을 줄 몰랐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미 동네가 텅 비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얘들은 하늘만 볼 수 밖에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도 정신차려야 나오는 것인데.

처음 겪은 홍수는 나를 더 멍청하게 하였다.

 

그렇게 새벽이 지나 아침까지 오니 마루를 이미 삼키고 방문만 넘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물에 잠길 처지가 되었다.

 

세간살이는 떠내려가도 별 아까울 것 없는데

우리아이들과 나는 어떡케 하나 했다.

 

그런데 그런데 밖에서 두런 두런 소리가 났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남편과 그의 친구들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미 물이 반을 찬 집 옥상에서 우리 얘들 이름을 목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밉던 그렇게 싫었던 남자가  옥상에서 목터지게 부르는 것이다.

그제야 난 울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오냐고 ..

 

그 때부터 비가 차츰 차츰 줄었다.

남편은 구명보트를 불렀나 보다. 나 보고 기다리란다.

난 아무말도 못했다.

그저 비만 그치면 그치면 ... 이 생각만 했다.

 

딸아이는 아빠를 보더니 얼른 안기고 볼을 부볐다.

아들도 아빠품에 안기고 난 보트에 탔다.

 

항상  골목을 걸어 나오던 길을  배타고 나오니 밤새 안녕이라고 하더니

이런게 그런거구나 했다.

 

남편이 그런다.

이사간 줄은 알았는데 집은 어디인 줄 몰랐단다.

엊그제 알았는데 하필이면 저지대인 이 마을에 이사를 갔더란다.

대피하는 학교에 갔더니 나도 아이들도 안보여 걱정하는데

집주인 아줌마가 아이들 이름을 말하며 새댁에게 말도 못하고 나왔는데

아직 집에 있으면 어떡해 하냐고 구조대에 신고하는데

그 때 그 소리를 들었단다,

 

부랴 부랴 구조하려 했지만 정확하게 집위치를 모르니

밤에 그 비가 쏟아지고 이미 동네는 물이 다 들어갔고...

 

남편의 얼굴을 보니 핼쓱하다.

주인 아줌마가 우리를 보더니 날 잡고 운다. 미안하다고...

 

내가 사는 집은 원체 낮은 지대라서 턱을 높게 지었지만  그래도 저지대라서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 곳이라고 그러신다.

 

홍수는 나에게 겁도 무지 많이 주었지만 그동안 서운하던 남편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벌써 십년이 지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