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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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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밭에서


BY 천정자 2006-02-23

나에게 내 이름도 얘들 이름도 부르지 않고

욕으로 부르는 친구가 있다.

다짜 고짜 전화 빨리 안 받는다고 따지고

그래도 전화 받았는데 하면 무조건 빨리 오란다.

난 그러면 무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얼른 내 친구네 집에 간다.

욕 먹으러.

 

으이구! 이 썩을년아?

와그리 연락이 안되냐?

집 전화는 왜 없애고 핸드폰은 폼으로 갖고 다니냐?

아무리 물어도 난 묵묵부답이다.

해봤자 또 욕을 할텐데..

 

왜 말을 안하냐고 다그치면 그제야 쬐게 기분이 나빠 질려고 그럴려고 한다니께

인자 욕 안한다고 하면서 얼르고 달랜다.

나도 인자 그 말에 속지 않는다고 쬐려본다.

눈 마주치면 둘이 똑같이 웃는다.

이렇게 둘이 십 수년 동안 해 온 짓인디 익숙한 연극 한 편이다.

 

그러다가도 딸기 따러 오신 분이

엊그제 집에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일꾼을 나 보고 알아보란다.

낸들 아냐?,,,,

하니 또 목소리 커진다.

니 알아 볼래? 아니면 니가 딸기 딸래?

할 수 없이 반은 강제고 반은 협조적으로 따야 한다.

이것도 벌써 수 년전 부터 나에게 말하던 투인데

안 따거나  사람 안 구해주면 날 죽인단다.

겁나네... 난 딸기를 따면서 궁시렁 궁시렁 한다.

니는 딸기만 따야 한다!

친구가 그러면 그래야지...

 

딸기 하우스는 길이가 백미터는 넘는다.

백미터 단거리로 뛰라고 해도 삼박오일 걸린다고 나 보고 느려터진 느림보라고 했는디,

이거 뛰는 게 아니라 유격 훈련에서 포복 하듯이  기어 가야 한다.

그것도 잘해야 한다.

아직 안익은 푸른딸기 건드리면 안된다.

꽃도 건드리면 안된다.

너무 힘주고 딸기를 따면 딸기가 상처난다.

내 뒤에 졸 졸 따라 다니면서 했던 잔소리 굳세게 또 하고 또 한다.

하도 들어서 이젠 내가 그 다음은 뭐고 이렇고 저렇고 하면 말이 많단다.

 

 

점심이 되니 나보고 된장찌게 지지게 근처에 냉이 캐오란다.

그러지,,,나나 지나 냉이는 디게 좋아 하는데, 겨울 냉이는 보라색이다.

겨울 바람을 먹어 꼭 시퍼렇게 멍든 여편네 눈두덩이 색을 갖고 뿌리깊게 버틴 냉이를 한 웅큼 캐오고 조금 더 캐면 냉이 겉절이도 먹을 수 있다.

 

 

밥도 많이 먹는다. 내 친구는.

그래야 그 많은 딸기 선별해야 되고 포장하고 이쁘게 단장해서 시장에 보내야 한다.

밥 먹으면서도 나보고 이거해야 되고 저거해야 되고 다 아는 애기를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듣고 있냐?

뭘?

밥만 먹지 말고 내 애기도 들어야 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난 냉이 겉절이에 밥 한 숟가락 얹어 놓고 그러고 말한다.

밥 다묵으면서 듣고 있으니 께 염려 말라고.

된장찌게 국물이 없다.

야! 이렇게 작게 끓였냐?

으이구! 이년아 니가 다아 먹었잖어?

내가 다 먹을 줄 모르고도 친구한테 타박이다.

또 끓여라! 안 그러면 나 딸기 안 딴다!

이러면 친구는 능청스럽게 참으로 내 다시 끓인다고 한다.

 

한 낮의 딸기 비닐 하우스 안은 찜질방이다.

나도 친구도 막에서 한 숨 잔다.

가끔가다 친구는 자면서도 잠꼬대다.

야! 바가지 갖고 와?

꿈 속에서도 잘익은 딸기가 주렁 주렁 열렸나 보다.

 

이쁘게 단장해서 박스에 담고 트럭에 실어 보내면 서쪽에 있는 산에 걸친 저녁해가 붉다.

구름도 붉고 , 그 밑에서 흐르는 강물도 붉게 번진다.

 

휘적 휘적 딸기 바가지 이고 다리를 건너

걸어가는 두 여자 중에 하나는 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