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36

보험을 들지 마십시오.


BY 천정자 2006-02-16

칠년이다.

보험 설계사이기 전 보험 아줌마로 통한 기간이다.

 

딸아이 분유값은 벌 수 있다고  나 살던 옆 동네 아줌마가  모집인 시험을 보라고 했다.

난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 시험를 본 게 아니라 우리 딸아이 분유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분유값은  쌀보다 비쌌다.

 

합격하던 말던 관심이 없었다.

몇 칠 공부하는 교육기간에 나오는 출근비가 나에게는 최대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보험회사가  나의 생계로 나의 직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난 무척 무식했다.  영업이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에

무뚝뚝한 말투, 특히 잘따지고 머리 들이밀고 대는 게 특기인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미인계라고 이왕이면 얼굴로 밀어부치는 영업이 그 당시엔 통했다.

물론 지금도 외모가 팔 구십프로다.

이러니 나에겐 전혀 관심 밖인데, 덜컥 모집인 시험에 붙고. 영업소 실적에 밀려 얼렁 뚱땅

모집인으로 등록을 시켜 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중에 나를 증원 해갔던 팀장이 아침에 부시시하게 앉아 있는 나를 끌고 간 게 첫 출근이었다. 소장도 나를 보는 눈치가 설계사 하나 추가! 식으로 쳐다 보았고 나는 오늘 출근하면 출근수당 얼마 나와요? 이랬다.

 

아침 조회에 앉아 있어도 된다는 식인데 나 또한 그 이상의 것도 들어 오지 않았었다.

문제는 수습기간안에 실적을 올려야 되는데 나를 데려간 팀장이 나를 설득할려고 해도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당장 떼꺼리가 없는데 무슨 말랑갱이 같은 보험을 들라냐고 되레 따지니 팀장이 아예 소장에게 나를 넘겨 버렸다. 알아서 처리 해달라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소장도 나에게 두 손 두발 다 들었단다. 말 길도 못 알아듣고 그러니 힘든 표정으로 모집원을 빼야 겠단다. 그러면서 나보고 그동안 받아갔던 출근수당을 도로 내 놓으란다. 우리 딸아이가 이미 먹어 버린 분유값을 말이다.

 

그 때 머리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천 상 내가 빚진 건데  내가 해달라고 사정도 한 적 없건만

그래도 도로 물어내라는 요구에 나는 당황했다. 집근처가 맨 욕을 하고 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던게 저절로 입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다.

 

" 니~ 미. 내가 언제 모집원 시켜 달라고 사정했냐? 이팀장 어디갔어? 씨 발  집에서 ?겨났다고  지금 무시하는 거 아녀? 아! 당장  삼자대면 하자구? 당장 떼꺼리 없다고 누굴 거지를 아냐?"

 

 순식간이었다. 나도 그런 말 튀어 나올지 몰랐고 듣는 소장도 귀까지 뻘개져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목소리에 핏대를 세워가며 당장 이팀장 찾아 오라고 뻗대었다.

그 때 나이드신 한 팀장이 나를 화장실에 데려갔고 난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뭘 잘했다고 그렇게 소리내어 울었는지 경리사원에 다른 설계사들도 화장실로 몰려왔다.

 

그렇게 수습기간이 후다닥 지나갔고 그 날 이후로 소장과 이팀장은 나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문제는 출근수당을 어떻게 돌려 줄 것인가가  나에겐 최대 숙제였다.

아침 조회를 나가면 상품 설명보다 음란 패설이나 찍찍 새어나오면 감춰 가면서  웃는 소리도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팜플렛을 들여다 보니  생경한 단어만 잔뜩 있고. 얼결에 시험을 보았으니 용어도 모르겠고

할 수없이 내 특기인 머리 디밀고 한 번 잘 따져보자라고 마음 굳히고 들여다 본 것이 연금보험이었다.

 

그 당시 모두 연고위주로 판매되었던 보험중에서 적금보험이 모두 일색이었고 연금보험은 뒤로 제껴져 있었다.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어 난 이젠 다루지 않는 상품인가 했다.

알고보니 소장도 설계사도 팔기 어려워 모두 손 털고 있는 상품이 연금이라고 했다.

 

약관을 뒤지고  살피고  가입설계서를 뽑기 시작했다.

성질 드러운 여자 괜히 데려와서  실적도 못내고 욕만 팍팍하던 여자가  말없이 구석에 눈 쳐박고 몇 날 몇 칠을 해도 누구하나 시비를 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느냐 죽느냐 하는판이다라고 얼굴에 써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니 교육수당이 나오는데 난 없단다. 왜냐고 물으니 실적을 넣지 못해서 그렇단다. 다른 설계사들은 자기거라도 넣고 교육수당을 받는데 왜 그걸 못하냐고 빈축만 주었다. 그래도 난 다행이라고 했다. 줘놓고는 나중에 도로 달라면 빚만 커지니 안 받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맨 날 죽치고 앉아 잘 보이지 않는 깨알같은 글씨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영업소에 웬 노신사가 들어와서는 연금보험 좀 설명해 달라고 한다.

 

영업소에는 나와 소장  그리고 경리사원 단 세명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