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680

아가와 모짜르트


BY 플러스 2010-05-04

  6주 만에 한국에서 보낸 짐이 왔습니다.   

 

  세 사람의 슬로바키아 아저씨들이 하루 종일  백 개가 조금 넘는 박스들을 풀어놓고  나가자 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분해된 채 나무 상자에 담겨 대양을 건너 와 다시 조립된 모습으로 서 있는 피아노 앞에 앉는 일이었습니다.

 

  굶주림... 을 채워야 했으니까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그렇게 시작해버린  '플레이'는,  지난 일 주일간 몸살이 나 끙끙 앓으면서도,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하루 종일 이리저리 물건을 배치하고 정리하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습니다.   아직 조율을 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그 일주일의 어느 날엔가 남편이 근처의 한 한국인 가정이 아래층의 항의로 결국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들이 쿵쿵거리는 것이 거슬려 살 수가 없다고 ...  법적 조치까지 취하겠노라는 경고까지 받은 모양입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마다 이 곡 저 곡을 꺼내어서 수없이 두들기고 있던 나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나마  이웃인 독일인들이 벽을 사이에 두고 옆쪽으로 늘어선 반 단독형태의 주거지였지만,  이 곳은 아파트형의 주거지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편은 전망 좋은 꼭대기층의 집을 계약했던 것입니다.

 

  독일인들에 비해 타인에 대한 간섭이 적고 덜 규율적이라는 평을 한국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인들도...  주거지에서의 소음 문제만은 관대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큰 일이긴 했지만... 플레이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방방마다 나 있는 커다란 창에 커텐을 달기 위해 교민인 아저씨가 오신 것은 어제였습니다. 

 

  세 개의 방에 도합  다섯 개,  양 쪽으로는 열 개의 구멍을 두 번씩 모두 이십 번의 드릴 소리를 내야 하는 것인데,  첫번 째 구멍을 벽에 뚫고 나자마자  현관벨이 울렸습니다.   아기를 안은 오스트리아 여인이었습니다.

 

  뜻밖의 방문인 것인데,  무슨 이유인지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한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맞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은 우리 집의 바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녀와 마주한 눈은 피아노 생각으로 걱정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드릴로 일하는 것을 멈춰달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한국인인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는 '일해도 되는 시간'과 오스트리아인인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시간대에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미 돈을 주고 일하고 있는 사람임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그렇다면 자신이 양해해 줄 수 밖에 없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아임 쏘 쏘리, 베이비'하고 말을 걸었고,  그녀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소리내어 웃으면서 돌아섰습니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이십 여 분이 아니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아저씨는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마음에 걸리는 일었습니다.  내가 이십 여분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각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안하면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저씨가 돌아가고 난 후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어차피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었습니다.

 

  바하를 내려 놓고,  쇼팽과 베토벤을 내려 놓고,  책장으로 가서 낡은 모짜르트의 악보들을 꺼냈습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려진 주제의 변주곡 하나,  소나타 하나를 쳤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쁘고,  가장 사랑스럽게..  반짝 반짝거리게...  그리고는  피아노 뚜껑을 덮었습니다.

 

  아침이면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는 것이 일과인데...  오늘 아침 피아노 앞에 앉으니 다시 아래층의 그녀와 아기로 인해 걱정스러워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 다 잊은 채로  최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여든 여덟개의 건반들을 휘몰아치며  깊고 거대한 울림도 마다하지 않으며  두 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아기에게 미안해졌습니다.   그나마..  씩씩한 남자 아기인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다시 모짜르트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소나타 하나를 정성껏..  아기가 좋아할 수 있을 사랑스러움과  예쁜 음색들을  한껏 담아 치고 나서야  일어서는 자신을 보니..  스스로 겸연쩍어 웃음이 납니다.  

 

  아마..  날마다 모짜르트 소나타 하나씩은 빼놓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귀여운 아가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