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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비엔나


BY 플러스 2010-04-19

 

 “베토벤이 이 집에서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대. 

  주일인 어제 오후 서재에서 인터넷을 검색중이던 남편의 말소리가 거실로 건너왔습니다 읽던 책에 조금씩 몰두되어 가던 중이었습니다.

  “음.. 여기 아이들 학교 근처 포도밭 있는 덴가 본데?

포도밭? 남편이 말한 포도밭의 정경이 금세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아이들이 다녀야 할 학교의 위치를 알아두러 그 근처에 갔던 날, 지금 살고 있는 집과 함께 양자택일의 대상이었다던 높다란 언덕배기에 위치한 집에서 건너다 보았던 포도밭.  발 밑의 경사진 땅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 선 소박한 가옥들 위로 내가 선 언덕 만큼 높다란 산 가득 일구어진 포도밭이.. 하늘과 맞닿은 채로 온 시야에 가득 들어왔었습니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가로질러 갈 때만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어서 더 그랬던 것인지, 내 눈 앞을 막아선 커다란 포도원을 보는 순간, 단번에 숨이 멎듯 아릿해졌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온 가족이 방 하나에서 합숙하다시피 생활하며 가족들이 서로 스트레스를 받기라도 할 세라 온 가족의 즐거움을 위해 철없는 재롱 겸 수다를 떨어 온 습성이 한 순간에 사라진 채갑자기 어른인 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두 단계쯤 덜컥 덜컥 내려앉던 그 묘한 감정은, 어쩌면 화가들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풍경을 첫 눈에 알아보며 마치 가슴에 품어 온 연인과 맞닥뜨리는 듯 마주하게 될 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던 것이었습니다. 그림 실력이 늘면 언젠가 꼭 화구를 들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다시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베토벤이 그 근처 들판을 산책하면서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나봐."

읽던 책을 덮은 내게,  이 때 쯤부터는 이미 전원교향곡의 곡조가 마음 속으로 청각화되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복합적인 상상력의 작용 속에서 나 자신 어느 새,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싱그런 들판의 내음을 맡으며 산들거리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은 채 너른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달려가 이번 주말에 꼭 가보자고 약속을 정했음에도 전원의 가락과 곡조는 내 곁을 빙빙 돌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두어 시간 견디다가 결국은 남편을 졸라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앉고 있었습니다. 주일 저녁이라 그런지 더더욱 인적도, 지나다니는 차도 눈에 뜨이지 않는 거리들을 이십 여 분간 지났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 내린 곳은 약간 경사진 곳으로 올라간 평범한 마을이었습니다. 소박한 낡은 가옥들이 늘어선 거리는 자그마했고 작은 돌들로 덮여 있었으며 조용했습니다.

차를 대고 내려선 자그마한 광장은 투박한 돌들로 바닥이 메워져 있었고 몇 그루의 나무와 뒤쪽으로 작은 교회가 보였습니다. 교회 옆 쪽으로 늘어선 집들 중 하나에 베토벤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 하나 눈에 뜨이지 않는 작은 광장은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어둑한 대기 속에 서로 어깨를 잇대은 채 늘어선 옛 건물들은 마치 전체가 원래 하나였을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소박하고 정겨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아름다웠습니다 

  안 쪽에 넓은 마당이 있어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는 가옥의 바깥 한쪽 벽면에 그 일대의 거리를 나타낸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베토벤이 묵었던 네 개의 집들과  그가 거닐곤 했을 거리들과  숲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비엔나의 중심부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을 이 시골마을에 그는 자주 찾아와 머물곤 했던 것입니다그리고.. 저 앞 쪽으로 뻗어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작은 돌길들 중 어느 길을 걸어 그 앞 어딘가에 있을 들로, 숲으로 가곤 했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거의 들리지 않는 귀이지만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전원의 인상들을그가 느낀 감동들을 다른 음악에서 보는 바의 그답지 않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으로  아름답고 소박하게,  정겨운 전원의 음악으로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어둠이 그렇게 쉽게 깊어지지만 않았다면... 눈 앞에서 구부러지는 돌길을 따라 들판으로 숲으로 당장 나가고 말았을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설렜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감동을 가슴에 안은 채 그대로 집으로 들어오기 아쉬워 집 근처의 공원에 들렀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은 밤이 주는 음영 아래서 마치 깊은 숲처럼 보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무들의 그림자 아래로 띄엄 띄엄 늘어선 채 희미한 빛을 내뿜는 작은 등불들.  그 옆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길을 따라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아직 잎이 무성하지 않아 하늘을 다 덮지 못한 나무 가지들 사이로 조각 조각 보이는 하늘에 별들이 오롯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예쁘고 따뜻하게 반짝였습니다.  

  남편 옆에서 말을 잃은 채 잠잠히 걷기만 하다가 마침내마음에 가득히 차올라 더 이상 담아둘 수 없게 된 말을 꺼내 놓았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는 거 같아." 

   몇 년 전 여행 중 들렀던 비엔나에서의 우울한 인상과  감정적 동요의  기억은 어느 새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 아래의 글들 중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는 있겠지요. ^^)    베토벤을 통해 느끼는 두 개의 비엔나...  이제, 이전 것은 사라져가며 그것을 대신할 또 하나의비엔나가  스물스물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이 좋아지려나 봅니다. ^^                                 

 

 

 

                                       

 

 

 

 (덧붙이는 말)  안으로 너른 마당이 있다고 한 음식점이 베토벤이 머물렀던 집이라고 합니다.

                       포도 나무들이 돌로 된 마당 몇 곳에 심겨져 머리 위쪽으로 군데 군데 넝쿨을 뻗도록

                       만들어져 있었구요..   음식은... 자신이 안에서 주문해서 가져 오는 간단한 것들이

                       주이고,  마당에서는 음료만 주문할 수 있어요.

                       솔직히... 음식 맛은 권할 만 하지 않지만,  여름 저녁을 보내기에는

                       참 낭만적인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사진에 보이는 베토벤 얼굴을 그려 놓은 나무판이 붙어 있는 음식점은

                       작은 교회 오른 쪽으로, 베토벤 하우스라고  크게 쓰여 있는

                       와인 판매점 옆, 안 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음식점인데

                       음식으로 치자면 이 곳이 훨씬 음식점다울 거 같아요.

                       주말이면 예약 손님이 꽤 많은 곳인 거 같아요... 자리가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