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도 아니고 몸의 컨디션이 바닥인 것도 아닌데, 어제는 피아노 뚜껑 한 번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억지로 몸을 당겨 의자에 앉았지만 1분도 못 되어 일어나 버리고, 방금 전 다시한 시도에도 역시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피아노 건반 자체도 아예 건드리고 싶어지지 않는 것. 이런 일은 이제껏 없었던 일입니다.
몇 년 전, 배움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옛 선생님과의 시간들을 떠올립니다. 주저주저하는 나를 독려하며 점점 더 깊은 물 속으로 이끌어 정신차리고 보면 어느 샌가 음악이라는 바다 깊은 곳으로 성큼 들어 앉게 하곤 하셨던 그 선생님 같은 분은 아마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음악적 기교 하나 더 익히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지금 시점에서는 그것마저 심하게 고갈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나마 그것이 있기에 참아왔고 일단 몇 번은 더 허비하고 마는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겠지만, 내게는 타이틀만 그럴듯해 보이는 소모적인 일들이 짜증스러워집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한심스러워질 때 조차 있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늘어가는 회의와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음악 자체에 대해 굳어져가기까지 하려는 마음을 돌려 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음악학이라 불릴 만한 개괄적이고 학구적인 강의들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 보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긴 것도 아닌 이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기쁨 가운데에서 스승과 제자로 또 때로는 동료나 친구처럼 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의견을 나누며 새로운 작품을 완성해 나가곤 하던, '함께하는 배움'의 과정을 평생이라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던 것은, 선생님은 내가 특별한 제자라고 이야기하며 기뻐하곤 하셨지만 실제로는 선생님 자신이 내게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선생님이셨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그리워집니다. 다른 곳이 아닌 그 곳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선생님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시간들이었는지를 그 때에도 알았지만, 지금은 더 분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라도, 그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 또 얼마나 귀한 것이든, 전혀 원치 않음에도 사람이나 환경 등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때로는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닫혀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연약한 사람인 것임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안타까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