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한창 더워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데 하늘에 스승님께서
"너 길거리에 나가서 폐지를 좀 주어보거라" 하신다.
나는 너무 의아해서 "예"???? 왜 주어야 하는지요 ,
언제나 의문문으로 물어보라 하신다.
왜 주어야하죠,,,,,
너 그렇지 않으면 벼랑 끝에 설 수도 있다. 하시니
나는 무슨 연유인지 대강은 알겠지만 정확하게는
해 봐야 알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내 처지와 맞지 않게 너무 많은
아이들을 너무 오랜 기간 동안 후원하고 있어
그런가,,,,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들 쓰면 되지 뭐,,,,,
아무턴 나는 시장에 장보려 다니는 작은 짐수레로
폐지를 주우려 다녔다.
그런데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많았기에
그리 쉽지는 않았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조금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박스를 줍다보니 너무 더워서 목이 타고 또 탔지만
내가 가지고 다니는 물 한병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행여 화장실이라도 가면 어쩌나 싶어
물도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폐지를 줍다보면 옷은 땀으로
이미 다 젖어 있고 조그만 시장에 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박스를 주워 묶어 끌고 가다보면
종이와 박스들은 차가 오는 길에 늘부러 질때도 있어
그럴때면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더 견딜수 없는 것은 동정심과 멸시 나이가 한참
어린것 같은데도 자신의 집 앞에 박스 실은 수레를 세워 두고
있다고 마구 욕설을 하는 젊은여성도 있고 누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신문이 담긴 박스를 주기에
그 뒷날 고마워서 팥시루떡을 조금 싸 가서
드리니까 60-70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둘러쓰고, 그러고
다니기에 나이가 한참 어린줄 알았더니
하시어 어이가 없었다.
선글라스는 눈에 들어가는 먼지와 바람을 막기 위해서 끼고
다녔고 모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썼고 수건은
땀을 닦기 위해 걸치고 다니는데 뭐가 잘못 되었나 ,,,,,
정말 사람이 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정말 고맙게도 박스를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가져가라며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다음에 또 오세요" 하는 말까지도 덧붙일 때면
저 분은 진심이시구나 싶어 허리를 굽혀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그자리를 떠난다.
그때서야 나는 하늘에 님께서 왜 내게
폐지를 주어라고 하셨는지,,,,,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파악하는 눈을 가지라고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님께서는 노래로 일러 주신다.
얼어붙은달 그림자 물결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파도 모우는 작은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마음을" ,,,,,
사람 대접이라곤 없는 곳 같았다.
심지어 폐지를 받아주는 그 젊은 사장은
계산하기 번거로워서 그런지 저울을
2키로식 깍아버린다.
언제 한번은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이후부터 행패가 정말 심했다.
내가 왜 그 더러운 꼴들을 다 봐야하나
싶어 눈물이 났다.
아주머니는 내게 식당 같은 곳에 가서
일을 하시지 그러셔요, 한다.
나는 누가 나 같은 사람을 받아 주겠어요
하고는 그날로 끝냈다.
딱 45일 폐지를 줍고 나니 몸무게가
정확하게 5키로가 빠졌다.
딸은 휴가에 와서는 속상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엄마는 두고 나를 욕하지 않겠냐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짐수레까지 다 팔아버렸어
안할거야 걱정마 ,,,,,
딸은 몇번이고 정말이지 정말이지 한다.
돈 없으면 말해 내가 돈 줄께"한다.
아니야 ,,,,,, 걱정마 딸은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그런 소리 할 만도 하다.
나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느끼기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늘에 스승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나갔을때 어두운 이들을 위해 살가갈 때
행여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하고
혹여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할까봐 내게 밑바닥
생활을 느껴보라고 하신것 같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라고 하신 것이었다.
사실 돈은 얼마나 벌겠는가
큰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하루 왠종일 줍는다면 몰라도,,,,
10킬로에 800원인데,,,,
요즘은 600원이라고 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렇게 또한 큰 경험을 해 봄으로써 그 분들의
힘듬을 더 알게 되었다.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