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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낭만적인 날2


BY 플러스 2008-03-04

 

 

" 엄마, 어디.. 나가세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있는 다영에게 어느 새 다가 온 딸이 물었다.   자동기계처럼 빠르게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안한 다영은 딸의 출현에 차라리 안도감을 느끼며그러나 단호한 척  대답했다.

 

" 엄마나갈 거야.   아빠만  늘 일이 있고약속이 있는 거 아니야.   엄마도  밤에 밖에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

 

딸은 다영을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재빨리 방을 나갔다.

현관을 나서려는 다영의 옆에는  어느 새 옷을 갈아입은 딸이 서 있었다.

"저두 같이 갈 거예요. "

 

두터운 점퍼를 차려입고 나선 바깥 세상은  온통 흰눈에 잠겨 고요했다밤에도 북적거리던 도시는  온통 낯선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오직 눈에 보이는 것은  온 세상을 다 덮고도  거세게 흩날리며  내려오는  눈발 뿐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기를  잠시 주저하던 다영이  다시 결심한 듯 거리로 나섰다.   눈발의 움직임 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다영의 발걸음은  어느 새  복잡한 거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몇 블록이나 떨어진 거리를 지나도록  인적도  차량도 뜸하기만 했다밤도 휴일도 상관없이 서울에서 가장 붐빈다는 거리에 이르러도  한산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갑작스럽게 내리는 큰 눈에 모두가 다 숨어버린 모양이었다.

 

다영이 딸의 손을 잡고  쉴 곳을 찾기 시작했다.  

불이 켜진 채 열린 곳은  '무슨 노래방또는 타이틀만 세련되게 바꾼 '주점'들 뿐이었다.   딸의 손을 잡은 다영이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도  연인사이인 사람들이거나  부츠와  미니스커트로 멋을 낸 채로  삼삼 오오 몰려 다니는 젊은 여자들,   또는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젊은 남자들 뿐이었다

 

새삼스럽게  그들과는  다른 옷차림, 다른 상황인 자신을  의식하며 더욱 조심스러워진 다영이  대로를 벗어나  커다란 까페 하나를 발견하고는  딸과 함께 들어갔다아이를 위해 주문한 따뜻한 코코아를  앞에 두고  다영이 천천히 까페 안을 둘러 보았다두 명의 남자가 한 테이블에또 친구인 듯한 두 남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다영의 생각만큼  한 밤의 거리나 문화도  그리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 보고  마음을 놓은 다영이 수첩을 꺼내어  일지를 정리하기 시작하자다영의 딸이 안도한 듯  소리내어 웃었다.

"엄마는 역시 엄마예요."

 

눈발의 기세가 조금 꺾인 거리로 다시 나온 다영이 얼마 걷지 못하여  뒤편에서 조심스러운 경적소리가 들렸다남편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어느 새 문자로  딸로부터 연락을 받은 다영의 남편이  모임을 서둘러 일찍 끝내고  그녀를 찾아 부근을 헤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영은 그 차에 타지 않았다약해진 눈발이 흩날리는 거리 속을  집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그 뒤에서  다영의 딸과  남편이 탄 차가  천천히 따라왔다.  마치 그녀를 보호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