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 엘리베이터에서....에 이어서)
다음 날인 주일 아침, 바쁜 준비 속에서 내 손에 들어 온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을 만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십 여 년 동안 몇 번 입어 본 적이 없는, 샀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타이트할 뿐 아니라 터프함이 느껴질 만한 별로 얌전치 못한 옷이었습니다. 옷을 손에 들었을 때의 망설임과는 달리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강해 보이는 듯도 하여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차림으로 햇빛에 약한 눈을 보호해 줄 짙은 색 썬글래스를 끼고 나섰습니다. 마음 한 편에는 전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여자와 다시 마주치기를, 단단한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런 차림으로 마주친 것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주일 예배의 말씀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시청 가능한 위성중계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화면을 통해 말씀을 듣기도 하고, 또 혼자서 성경을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기도 하면서 예배의 시간을 마치고, 옷차림 만큼이나 터프하고 자유로운 태도로 예배당의 계단을 내려오기도 하고, 남편을 따라 교회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사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그런 마음, 발걸음으로 셔틀버스 타는 곳에 섰습니다. 길게 늘어섰던 사람들의 줄은 어느 새 사라지고, 몇 사람만이 앞에 서 있었습니다.
곧 작은 셔틀 버스 하나가 미끄러지듯 멈추어 섰습니다. 그 때 서서히 들어 오는 셔틀 버스 만큼이나 여유로운 태도로, 한 남자가 버스 곁에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낯이 익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서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나는, 그 ‘낯익음’에 대해 머릿속으로 묻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초기의 내 글들과 관련된 내가 알고 있는 ‘한 목자’의 얼굴이 대비되듯 떠올랐습니다. 인상이 꼭 닮았던 것이었습니다. 같은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내 뒤에 선 사람들이 그 사람을 향해 아마, 소리없는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남자는 답례라도 하듯 내 뒤 쪽의 어딘가들을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내 눈은 그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거리가 더욱 좁혀지고 있었고, 마침내 내 뒤에 선 남편이 그 사람에게 소리없이 웃으며 인사하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남편도 아는 사람....? 내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쳤을 때에 그 사람은 이미 나와 두어 걸음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고, 짙은 썬글래스 속의 내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몇 십 분 전에 위성화면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본 ‘큰 목사님’이셨던 것입니다.
바로 눈 앞에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때까지 어설픈 불량학생 흉내라도 내고 있는 듯 했던 나는 자세를 곧바로 한 채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이제는 터프함이 아닌 씩씩한, 모양만 불량인 학생이었던 것처럼….
사람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이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내게는 화면이나 단 위에 선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졌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순간적으로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겹쳐져서 더 그렇게 보였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셔틀버스에 올라타고 나서, 오늘 그렇게 지나친 차림으로 나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건방진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많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마주친 목자와 관련하여 두어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그 주일 예배에서 나는 위성화면을 통해서 목자로부터 이전부터 꼭 듣고 싶었던 단어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공격적이며, 위협이 되고, 때로는 부담스러워 차라리 없는 듯 잊고 지내고 싶기도 한 우리의 이웃이며 형제인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가까이에 굶주리고, 벼랑에 내몰린,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동포인 사람들을 두고, 지금도 국민적 정서를 건드리곤 하는 먼 이웃에 해당하는 나라를 향하여만 애정과 사랑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목자를 향해 들던 섭섭함이 조금 누그러지던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한편, 직접 들어갈 수 없는 나라이기에 이웃인 나라들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관심이 쏟아져 들어갈 길을 예비하고 계신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의 ‘바람’이 투영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편, 비록 썬글래스를 낀 눈이지만 목자와의 마주침 속에서 특이하게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경우, 보통은 상대방의 마음의 상태라던가 기분이 전해지기 마련인데, 그 짧은 순간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이 보이는 듯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전, 우리 부부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셨던 목사님으로부터 느꼈던 특이함과 대비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 목자는 앞에 마주 섰을 때에, 마치 앞에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 했다면, 이제 마주친 목자는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외국의 거리에서 다른 동양인이 아닌 한국인을 스쳐갈 때 느껴지는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통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인데, 내 육신의 피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외가쪽 어른들로부터 느껴 본 적이 있는 듯한 것이었습니다.
.
잠시 스쳐간 만남에서 느껴졌던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은,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따라다니게 했습니다. 예배 후 장을 보러 들렀던 대형 마트에서 스치며 지나가던 많은 타인들 속에서도 자주 그 온유한 느낌이 흘러가는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