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 지는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많이 컸다고 생각한 나이였던 것만은 확실한 사춘기 시절의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교에 잠시 들렀다가 운동장이 너무나 작아 보이던 것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그처럼 작은 운동장에서 그 많던 아이들이 함께 운동회를 하기도 하고, 뛰어 놀았던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아득하게 몰려왔습니다.
독일에서 살았던 도시는 독일에서 몇 째 안에 드는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보다는 훨씬 작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거대도시인 서울이,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그렇게 졸아들어 버린 초등학교 운동장 처럼 작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다랗게 늘어 선 숱한 건물들의 숲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습니다.
화려한 장신구에 명품 옷을 걸치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멋쟁이인 사람들을 거리 거리에서 볼 때에도 그저 물건들이 가끔 눈에 뜨일 뿐, 오히려 속에 든 사람은 그리 눈에 뜨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 보이곤 했던 것입니다.
어제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몇몇 친지분들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너 보러 여기까지 왔다’고 하던 친척 오빠를 비롯하여 누구 하나 반갑지 않은 얼굴 없었습니다. 모두 모두 보고 싶던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가운 얼굴들을 앞에 두고 나는 중등생이었을 무렵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고 느끼던 그 아릿함을 다시 느끼게 되던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이 그간 더 많이 늙으셨을 뿐 아니라, 어머니를 비롯한 몇 분이 얼마 전 형제를 잃은 슬픔과 허망함을 아직 채 극복하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었습니다. 부모를 잃는 것과 형제를 잃는 것이 또 이렇게 다르구나...라고.
내가 어린 시절에 몇 년간 함께 살기도 한 막내이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이모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대신 이모가 학교에 오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만큼 빼어난 미인에 멋쟁이셨는데, 세월과 오빠를 여읜 슬픔에 초췌해진 이모의 얼굴은 눈물이 나서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을 만큼이었습니다.
모임이 파할 무렵이 되어 오신, 엄마가 '압구정동 아줌마'라고 부르는 친구분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값비싸고 아름다운 옷, 잘 다듬어진 머리와 화장, 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그 분의 모습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누구보다 반짝거릴 만큼 화려하고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치장할 만한 능력을 지금도 가지고 계실 뿐 아니라, 자신을 가꾸는 데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사는 분임을, 또 자신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분임을 누가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알듯 했습니다.
주일인 오늘 아침, 주님의 전에 앉았습니다.
형제 자매, 부모, 가족 간의 사랑 조차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확립되어져야 함을, 즉 우리 안에 주님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져야 함을 아마 목자는 이야기하고 계셨던 듯 합니다.
맨 뒷자리 쯤에 앉은 나는 그 구석진 자리에서, 다른 때와는 달리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눈이 갔습니다. 주님의 전에 속하여 앉은, 말끔하고 단정하게 잘 차려 입은 사람들, 잘 닦여진 얼굴들, 그리고 한 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옆 자리의 남자도 흘깃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지 못한 채 떠나신 내 기억 속의 외삼촌의 거친 얼굴과 손이, 그리고 이모와 몇 분 친지들분들의 슬픔에 젖은 얼굴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내가 앓기 시작한 시점이, 이미 다른 일로 인해 마음이 조금 약해져 있던 상태이긴 했으나, 외삼촌의 죽음을 알리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이후 부터라는 것, 그리고 일 주일이 넘도록 앓았던 것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의 소식으로 더해진 약함 또는 앓음은, 시어머님이 소천하셨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셨음에도 여전히 주안에서 어떤 생명감을 느끼게 되는 어머님과는 달리, 외삼촌의 부고를 놓고는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모르게 약해진 마음 속에서 일 주일이 넘도록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앓았던 것입니다.
어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할 만큼 작아진 이모의 어깨를 안으면서도 울지 않았고, 내 안에 차오르는 긍휼함 만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오늘 주의 전에 앉아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단한 얼굴과 말쑥한 차림으로, 또 주님에 속하기까지 했으니 세상 것 뿐 아니라 다른 것도 염려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내게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강하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 독일에서는 외모도, 부유함도 훨씬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전혀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가 그 시간 내게 몰려왔던 것입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상대적인 감정들이었습니다.
그런 한 편, 나 자신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약함 가운데 있었을 때에도 한 방울 밖에는 흘러 내리지 않았던 눈물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몇 분의 삶을, 그들의 얼굴을, 그들의 영을 마음에 두고는 내 안에서 수십 방울의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못한 채로 흘러 내림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내가 알기 어려운 그 분, 삼위 일체 한 분이시라는데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의미와는 달리 내게는 알기 어려울 만큼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 분. 알고 싶은데 이해하고 싶은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그 분.
그러나 약하고 절망 가운데 처한 사람들 속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거하시며 생명을 나누신 그 분의 마음에 대하여, 그 사랑에 대하여 조금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간 내 마음 가운데 든 기도를 들어주셨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