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벨이 울렸습니다. 아침 나절 에어컨 기사라며 전화한 아저씨였습니다.
집의 구조와 설치해야 할 위치 등을 잠시 살펴 본 기사 아저씨는, 계약서와는 다른 금액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계약을 한 대리점측과 먼저 통화를 하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전화를 건 후 자신이 먼저 재빨리 상황을 이야기하고 난 후에 바꾸어 주었습니다.
대리점 측에서는 처음 계약한 금액만 주면 된다고 내게 이야기하였고, 기사 아저씨는 상대방 아저씨에게 화가 났던 것인지 다시 수화기를 바꾸어 들고는 야단치듯 몇 마디 언성을 높였습니다.
지은 지 오래 된 아파트에 살다 보니, 그간 이런 저런 일로 여러 명의 일하는 아저씨들을 보아왔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작은 거짓말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늘어놓는다거나, 또 잘 살펴보지 않으면 몇 가지를 빼먹는 것인지, 잊는 것인지 한다던가, 더 자주는 슬그머니 금액을 올리곤 하는 것을 경험한 지라, 나는 아저씨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끊은 아저씨는 별 말 없이 일을 시작했고, 그리고 조금 미안했던지 자신의 일에 대해 변명하듯 몇 가지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 중에, '이게 다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말인즉, 에어컨의 실외기를 아파트 벽 바깥에 설치할 때에 밖에 나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터라, 우리집이 위치한 10층의 높이와 아저씨의 말을 연결시켜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는 활기차게 돌아서서 도구들을 챙겨서 베란다 쪽을 향하는,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일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부당하다고 여기며 받아들이지 않은 몇 만 원이 마음에 밟혔습니다.
몇 시간에 이르는 설치 과정 동안 가끔씩 아저씨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한 바 밖에서 해야 할 것 같았던 작업인, 기존의 외부 앵글을 떼어 내고 그것을 새로운 자리에 달고 하는 일들이 모두 벽의 안 쪽에서 바깥을 향해 몸을 굽힌 채로 이루어지던 것이었습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다시 이전의 어떤 아저씨를 떠올리며 또 뭔가 과장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가는 가운데, 일은 점점 마무리 단계에 가까워지는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아저씨 쪽을 바라보니, 안방의 베란다 창문 바깥의 허공에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다가가 보니 바깥에 설치되어진 앵글에 놓여진 에어컨의 실외기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철재로 되어진 앵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10층 높이의 허공에 앉아 있는 듯한 아저씨의 모습은 내 가슴 속이 미슥거리듯 울렁거리게 했습니다.
혹 중심이라도 잃을까 싶어 말도 걸지 않은 채 지켜보면서 밖에서의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하는 작업은 꽤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아저씨는 가끔씩 주변의 풍경을 먼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작업을 생명을 걸고 하는 거다...하던 아저씨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몸을 지탱해 줄 다른 안전한 기계가 옆에 없이 그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그지 없어도 보였습니다. 만일 독일에서라면 어느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만에 안으로 들어 온 아저씨를 보고 안도하며 '이런 일은 겁이 많은 사람은 못하겠네요.'하고 말을 걸자, 아저씨는 아직도 아까의 일이 마음에 조금 걸리는지 웃으며, '그래서 제가 더 많이 불렀던 거예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변변한 안전장치도 없이, 보조하는 사람도 없이, 독일에서는 미탁 파우제라고 부르는 시간대에 쉬는 법 한 번 없이, 아저씨는 혼자서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한 편,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과정이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위험을 무릅쓰며, 자신의 몸이나 건강, 시간적 여유 조차도 생각지 못한 채로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바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장한 독일인들은 조금만 몸이 아파도 며칠씩, 때로는 몇 주일씩 병가를 내는 데, 아파도 쉬지 못하고, 근무환경 보다는 돈 몇 푼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아침부터 밤늦도록 애쓰며 여유없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바로 그 모습이 수많은 남편들의 모습이요, 또 여자이면서도 여러 몫을 해 내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일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져 오는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일을 잘 끝내고 난 아저씨께, 잔금을 지불하면서 합의된 설치 비용에 만 원을 더 얹어서 드렸습니다.
돈을 잘못 세서 받은 줄 알고 만 원을 도로 내미는 아저씨께 웃으며 양 손을 저어 보였습니다. 아저씨가 잠시 바라보더니 고맙다고 말하며 공손해 보일 정도로 머리를 숙여 보이셨습니다. 땀에 젖은 아저씨의 머리 정수리 부분에 듬성듬성 흰 머리가 보였습니다.
정말 고마운 것은, 아저씨의 위험한 작업 끝에 다가 올 여름 더위 걱정을 덜게 된 나일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