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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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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창문 3


BY 플러스 2007-02-27

버스는  인가 하나 보이지 않는  외진 곳,   산들로  둘러 싸인 들판 어귀에  일행을 내려 놓고는  먼지를  자욱히 남기며  왔던 길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다니까.   경기도에서는  세 번 째로  높은 산이지.   천 이백 미터 조금 안 되지, 아마. "

"어머그런 산엘 어떻게 올라가요? "

"하하정상까지 올라갈 게 아니야.   중간 부근에서  다른 코스를 타고 내려올 거야. "

"몇 시간이나 걸린다고 그랬죠? "

"2시간, 2시간 해서 4시간 잡으면 될 거 같애. "

"4시간이라고요? 큰일 났다."

 

앞 쪽에서  선배들과  신입 여학생들이 병아리처럼 왁자지껄하게  주고 받는 목소리를  들으며  영선은  자연스럽게  늘어선  줄을  따라  산 입구로  향하는  들판으로  들어섰다.   비스듬하게  높아지는  야트막한 둔덕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푸른 잡초들로   무성했다.     잡초들  사이로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뒷사람을 따라  발을  옮기던  영선의  귀에  정인의  목소리가  높게  들려왔다.

 

"이 꽃 이름 아시는 분 계세요? "

 

누군가가  대답하는  소리와  이어지는  웃음 띤 대화소리들이  분명치 않게  앞 쪽에서  들려왔다.

 

" 정말 신기하다.   이 꽃은요?   이 꽃 이름은  뭐예요? "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달리  정인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려왔다.   다시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와  웃어 젖히는 소리들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어  정인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맞이꽃?   달맞이꽃이라구요?   이게    달맞이꽃이라구요? "

 

멈춰 선 정인에게로   점점  가까와진 영선의  귀에  한 선배의  목소리가  더 들려왔다.

 

"그렇다지낮 동안은  꽃잎을  접고  있다가  밤이 되어  달님이 떠오르면  피어오른다는... "

 

"세상에이렇게  예쁠 수가.... "

 

정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제는  정인의  바로 옆에까지  다가 온  영선이  멈춰섰다.   주변에는  몇 가지  종류의  꽃들이  있었다.

 

영선이  궁금증을  느끼며  정인에게  물었다.

 

"어떤 꽃이  달맞이꽃이라는 거야? "

 

정인이  영선을  돌아보았다.    그 눈은  영선이  그제껏 보아 온 정인의  눈과는  달랐다.   햇살이  들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깊고  서늘한 눈빛이  느껴지지  않는  검은  어두움을  담고 있던 눈.    눈은  이제  여전히  검고  깊으나   마치  꿈꾸는 듯한  소녀의  몽상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잠시  멈추어 있던  정인의  눈은    다시  꽃을  향한 채로   영선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바로  이 꽃이야여기  네 개의  하트모양을 한  노란 꽃잎을 접고  있는 꽃이  보이지?   이 꽃이  바로  달맞이꽃이래."

 

정인이  가리키는  꽃은  영선이  풀숲을  따라오며  이미 본  '노란 꽃들중의  하나였다.

 

" 정말  예쁘지 않니?   생각해 봐.   낮이면  아무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꽃잎을  접고  있다가  밤이 되면,   동산 위로  달님이  떠오르면, 마치  그리운  님이라도  맞이하듯  예쁜  꽃잎을  활짝 펴고  피어오른다는 거야.  "

 

이 색깔도  이 꽃이  달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달님의  색을  가지게  된 걸 거야. "

 

정인은  숨쉴 틈도  없이  선배가  좀 전에  했던 말에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넣어서  쏟아놓는  것이었다.    들뜬  사춘기 소녀처럼  꿈에 젖은 듯  늘어 놓는  정인의  말을  들으며  영선은,   방금 전까지는   '노란 꽃'일 뿐이었으나  새롭게  '달을  사랑하는특별한  꽃으로  다가 오며  다시  보여지는 꽃을,  정인의  곁에  서서  함께 바라보았다.

 

"이름이  특이하다. " 

 

영선이  자신에게  떠오르는  생각  뒤에  덧붙이듯  말했다.

 

" 그렇지? "

 

자신의  말을  끝내고는  아무 말 없이  꽃들만  바라보던  정인이  말했다.

 

" 이름이란  특별한 거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와  같던  꽃이라도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주면  그 때는  독특하고  특별한때로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지. "

 

영선이  자신의 생각이라도  들킨 듯  흠칫거렸다.

 

" 우리 말이야.   꽃들에게  이름 붙여주기 할까? "

 

정인의   제의는  영선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꽃들 말이야.   여기에  숱한  들꽃들이  피었어.   누군가가  붙여주어서  자신의  이름이 된  이름들을  가진 꽃도  있지만그렇지  못한  꽃들도  있을 거야. "

 

" ...  누군가가  붙여 준 이름이  있는 꽃이면  어때?   우리가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면  되는  거지. "

 

정인이  당황한 채로  가만히  있는  영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하며   잠자코    영선을  잠시 바라보던  정인이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다.

 

밝았다.  

 

그녀의  웃음은  이제껏  영선이  몇 번  보아왔던  그녀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던  밝음으로  햇빛 속에서  흐드러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달님이  떠오르면   활짝  꽃잎을  열고  맞이한다는  황금빛의  달맞이꽃처럼.

 

영선이   그런  생각을  마치 충격처럼  느끼며  아무 말 없이  정인을  바라볼 때에  다시  정인이  영선을  잡아끌듯  한 꽃에로  이끌었다.

 

"우리.   이 꽃부터  시작하자. "

 

정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달맞이꽃보다  키가  작은  풀줄기 사이로  연보랏빛  작은 들꽃이  피어  있었다

 

" 뭐라고  이름지으면  좋을까? "

 

영선을  바라보는  정인의  얼굴은  아이같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당황한 채로  정인의  말을  내내  듣고만 있던  영선이  겨우 대답했다.

 

" 글쎄.. "

 

일행들은  어느 새  모두  그녀들을  앞질러 가고,   영선과  정인만이 남아 있었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정인이  자신의  말에  자신이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 이 보라색 꽃은  홀로 피어있어.   바로  옆에는  여기흰색의  꽃들이  몇 송이씩 무리지어  피었는데이름도  없이홀로... "

 

그래바로 그거야"

 

갑자기 정인의  목소리가  생기로  넘쳤다.

 

" 이름없는 꽃. "

 

" '이름없는 꽃'이라고  이름을 짓는 거야그렇게 지어서 안 될 거 없지."

 

정인이  깔깔대듯  밝게  웃었다.   그런  정인에게서  장난끼마저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영선이  정인을 보고  처음으로  함께  웃었다.

 

그것이  바로  영선이  정인을  처음으로  ' 바라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