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흐리더니 밤 사이에 살짝 비가 내렸던 모양입니다.
아침 일찍 차 문을 열려고 다가서는 순간, 언뜻 들녘 너머 수풀이 안개로 덮인 것이, 흡사 아련히 머나 먼 어느 곳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를 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숲 대신 들녘으로 산책을 나갈까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째 몸에 익은 숲의 공기는 그대로 운전석에 앉게 했습니다.
이제 곧 녹음을 떨어낼 숲은 축축한 아침 공기 속에서 오히려 더욱 깊어진 초록으로 휩싸여 있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누그러진 채 흐릿한 아침 볕은 칠, 팔 층의 높이로 빽빽하게 늘어 선 나무들의 숲 속을 어스름해 보이게 하였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잎사귀에서 잎사귀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후둑 거리는 소리를 간간이 들으며 걷는 숲은, 숲이기 보다는 초록 바다같았습니다.
점점 높이 떠오르는 태양이 조금씩 나무들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을 내어 보내며 아직 남은 안개들을 뿌옇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겹겹으로 깊은 공간 속에 자리잡은 나무들이, 밝고 부드럽게 뚫고 내려오는 햇살을 받으며 부분부분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 햇살 아래에 선 숲 속의 나무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전엔 그저 숲의 냄새라고 생각하던 덩어리 속에서, 오늘은 넉넉하게 수분을 품은 공기 안에서 나무들이 내뿜는, 꽃향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콤하고 독특한 향을 내뿜는 몇 종류의 다른 향기들을 맡게도 되었습니다.
어쩌면, 숲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 지...
이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숲을 만끽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째 연속으로 숲길을 거닌 지 삼일 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 입구에 들어서면서 나는 잠시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를 듣고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이전의 이틀간도 분명 새들의 지저귐이 없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었던 지, 나는 그저 숲길을 걸었을 뿐, 그 숲이 주는 아름다움 안에 온전히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던 날에야 인식한 새소리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완전한 평화로움 속에서 나 자신 마저 잊은 듯 숲을 느끼고 그 자연 속에 동화되어질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감각을 더 깊어진 채로 회복하듯..
집에 돌아오자 마자 잠시 시작한 연습에서 쇼팽의 연습곡 중 하나인 '겨울바다'라는 부제를 가진 곡을 집었습니다.
양 손 끝에서 울려 나오는 연속되는 아르페지오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음향이, 오늘은 겨울 바다라기보다는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초록빛 바다 같았습니다. 점점 더 충첩되어지는 깊은 울림 속에서 숲은 점점 더 일렁이며 거대한 바다처럼 장대해지며 마침내는 거대한 물결이 모든 것을 덮치듯 하는 장중한 울림 속에서 마감을 이루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의 숲인 것인지...
그 여음이 온 공간을 가득 채운 채로 남아 있는 위로, 떠오르는 작은 멜로디를 연이어 하나 시작했습니다. "Give Thanks with a grateful heart"로 시작하는 노래였습니다.
그 작은 멜로디는 장중한 음들이 남은 공간을 맑고 투명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내렸습니다. 하나 하나의 음들은 마치 숲의 물기를, 이슬이라도 머금은 생명들처럼, 촉촉한 생기와 윤기로 반짝거렸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들인 것인지...
초록빛 바다 속에서, 안개를 뚫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햇살 속에서, 그 맑고 촉촉한 대지의 공기 속에서 행복한 나무들처럼, 이 공간 안에서 나 또한 행복한 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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