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았습니다. 그 햇살 아래에 선 나무와 꽃들도 더 이상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냇물도 반짝이며 흘러가기를 멈추었습니다.
여자는 머리에 이는 어지러움증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파란 하늘이 일렁거리며 흔들렸습니다. 그 하늘과 함께 흔들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여자가 중얼거렸습니다.
"아담에게 가야 해. 아담에게 가서 이야기해야 해. "
급히 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머릿속은 점차 뱀이 했던 말들 속으로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의 머릿 속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된다고? "
그녀가 자신의 머릿 속을 빙빙 도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조용히 꺼내 놓자, 그녀 안에 몰려든 두려움을 밀쳐내어 버릴 만큼의 대담함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지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갑자기 멈추어 자신의 말을 들었을 누군가가 있기라도 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초록색 잎사귀들을 머리에 인 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나무들마저도 그녀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채고는 여자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는 잠시 선 채로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조용히 있었습니다.
좀 더 커진 대담함 안에서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생각으로 돌아온 여자의 안에는 이제 금지된 과일에 대한 강한 바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더 커다랗게 그녀 안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여자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눈 앞에 동산이, 그리고 동산 가운데에 심겨진 금지된 과일나무가 봉긋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산으로 향하는 길 위에 들어서서 한참을 걸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서둘 것 없잖아. 내가 먼저 가서 한 번 보고 확인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아담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아담은 여자가 뱀에게서 들은 말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해 버릴 런 지도 몰랐습니다. 여자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자 자신의 말 보다도 중한 것일 터였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동산에 내려오시곤 할 때면, 아담의 얼굴이 기쁨과 경건함으로 햇빛보다 더 환하게 빛이 나곤 하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럴 때의 아담의 얼굴은 눈이 부셔서 바라보기가 어려울 만큼 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 때면 아담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모두 놓아버린 채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곤 했습니다. 심지어 아담의 곁에 있던 자신 마저도 잊은 듯 하다고 느꼈던 것도 떠올렸습니다. 그런 때에 잠시 잠시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들던 이상한 허전함도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그 때마다 곧 잊혀지곤 하던 잠시의 그림자같은 것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녀의 가슴 속에서 실체없이 자라나는 빈 공터처럼 커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된다고? '
여자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