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덴마크 농민들에게 농업 탄소세 부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08

어린 우화 - 뱀과 하와 5


BY 플러스 2006-02-18

바람이 서걱거렸습니다.   아니,  바람에 잎사귀들이 서걱거렸습니다.   뱀은,  아니,  뱀의  몸 안에  자리잡은  천사의  가슴은  처음  느끼는  감각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민감하게  두근거렸습니다.   뱀의  후각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들,  아니,  바람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뱀의  살갗을  통해  전해져 오는  대지의  촉촉하고  차가운  느낌,   서늘한  공기와  은은하게  내려서  들어오는  햇살의  온기까지  천사는  한동안  음미하듯  감각을  곤두세운 채  들이켰습니다.  

 

"네 개의 다리로  대지 위에 서 있는 것도  나쁘진 않군."

 

뱀의  몸 안에서  그가 느끼고  있는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잠시의  만족감 안에서  정지해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뱀은  여자가  선  복숭아 나무 위로  조용히  기어올랐습니다.  여자는  그  나무 아래에서  열매들을  따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던  여자의  손이  어느 순간  깜짝 놀라며  멈추었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멈춘 채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정지되어 있던  두 개의 눈은  여자를  향해  어느 새 입을  열었습니다.

 

"놀랐니?   미안해.  쉬이이."

 

여자는  놀란 채로  멈추었던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물었습니다.

 

"지금  내게  미안하다고  그랬니?"

 

"내 앞에 있는 것은  지금  너 밖에 없지.  쉬이이."

 

뱀의  말에  여자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구나.   난  단지,  네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  의외여서."

 

"쉬이이.  난 내가  널  놀라게 한 것이 미안하다는 거야."

 

뱀은  마치  화가 나기라도  한 듯  여자로부터  멀어지려는  듯  몸을  휙  뒤로  돌렸습니다.

 

"잠깐만"

 

그런  뱀을  여자가  불렀습니다.

 

뱀이  고개를  여자쪽으로  돌렸습니다.

 

"쉬이이.   무슨  일이지?"

 

여자는  뱀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나도  미안해.   며칠 전의  일 말이야.   네가  먹이를  잡는 것을  방해한  것 말이지. "

 

뱀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있던  뱀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 쉬이이.  그 날  너를  공격하려고 했던 거  미안해. "

 

뱀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르르  나무에서 내려와  풀숲을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풀들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선명한  초록빛을  띠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복숭아 나무 앞에 그대로 잠시 서 있던  여자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뱀의  뒤를  좇았습니다.

 

"잠깐만."

 

뱀이  몸을  틀어  여자를  돌아보았습니다.   초록 풀잎들  앞에 선  뱀의  몸 껍질이  촉촉한  물기를  띤 채로  햇살  아래에서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뱀은  그렇게  선 채로  여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여자가  천천히  말을  꺼냈습니다.

 

"너는..   너는  생각보다..."

 

뱀이  말을   받았습니다.

 

" 생각보다?"

 

" 으응.   생각보다  차가운  동물이 아닌 것 같아. "

 

뱀의  입가에  알듯  모를듯한  엷은  미소가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여자는  계속하여  더  말을  이었습니다.

 

" 그리고..   생각보다..   내  말은,  그러니까  그렇게  밉게  생기지 않은  동물인 것 같아."

 

뱀의  입가에  아까보다는  더욱  확연한  미소가  지나갔습니다.

 

"  생각보다는  징그럽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지? "

 

여자가  놀란 모습으로  뱀을  바라보았습니다.

 

"  나도  알아.   나는  토끼처럼  보드라운  털도  갖지 못했고,   사슴처럼  날렵하고  우아한  맵시도  가지지 못했지.   그 뿐 아니라   그런  동물에게서  보이는  유순함과  천진함도  보이지 않지. "

 

뱀의  눈은  깊게  빛나며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더욱  놀란  눈으로  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너,  너는... "

 

여자가  숨을 한 번 몰아 쉬었습니다.

 

 " 너는  동물처럼  이야기하지 않는구나.   마치  우리처럼,   아담이나  나처럼  이야기를  하는구나. "

 

뱀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습니다.

 

" 외형이  아름답거나  순해보이지는  않아도,   내게도  뛰어난  점은  하나 쯤 있는 것이지. "

 

뱀은  다시  화가 난 듯   여자로부터  뒤돌아  풀숲 안으로  사라지려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급하게  뛰다시피하며  다시  뱀을  불렀습니다.

 

" 그런 뜻이 아니야.   이 봐.   잠깐  기다려 봐. "

 

뱀이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다시  여자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여자가  숨이 찬 듯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 그렇지 않아.   너는,  다시 보는  너는  전혀  달라. "

 

뱀이  가늘어지고  깊어진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 밝은 햇살  아래서  보는  너는  참 선명하고  이쁜 색깔들을  가지고  있어.   풀빛같은  초록빛과   나뭇가지 같은  선명한  밤색으로  둘러 싸인  아름다운  무늬와  색깔을  가졌어. "

 

뱀은  아무 말 없이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여자가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습니다.

 

" 너는  참  독특하구나. "

 

뱀과  여자 사이에  잠시의  조용한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몇  가닥씩  흐르며  지나갔습니다.    여자의  옅은 밤색  머리카락이  조용히  바람을  따라  흔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