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노란 은행잎도 가을바람에, 비에 많이 떨어져서 점점 본체의 줄기만
허옇게 드러내고 있다.
대학병원에 예약한 날이라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남편은 아침식사를 꼭 하는 타입이라
채혈실에 겨우 시간 맞춰 도착했다.
바쁜 남편은 나를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른 시간인 데도 사람은 많다.
하루에 사람으로부터 뽑은 피의 양은 얼마나 될까?
두어 시간의 공백이 나에게 주어졌지만 폰은 밥이 모자란다고 울고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서 폰 충전하는 곳에 폰을 내맡겼다.
폰과 나는 잠시 이별이라
내 손이 허전하다.
늘 함께 했던 껌 딱지 같던 폰이 나와 헤어져 있음에 어색하고 무언가 불안하다.
걸어보자.
대학병원을 나와 붉은 단풍을 친구삼아 계단을 내려가서 길을 걸었다.
아침공기의 싸한 상쾌함이 좋다.
걷다가 시간을 어름 잡아 보고는 다시 병원으로 컴백하니 예약시간이
20여분 남았다.
접수를 하고, 폰을 되찾으니 편한 안도감의 호흡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벽에 있는 몇 점의 그림에 시선을 돌리며 그림 감상을 했다.
제목을 보지 않고 그림을 읽고 나중에 제목을 보고 나와 생각이 같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선 한참 머물며 작가의
마음을 읽어 보려 하다가 돌아선다.
색채 속으로 여행을 하다가 대기실로 다시 돌아가니 좀 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
언제나 정겹고 미소 띤 얼굴로 환자를 맞이하는 교수님은 일 년 전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당신이 만나는 환자가 늘 나같은 환자이기에 별일 아닌 일엔 호들갑스럽게 말씀을 안 하시고 그대신 주의 사항을 주신다.
감사하다.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한번씩 내원해서 확인하고 또 일상으로 돌아가서
평정심으로 생활을 하고 소소한 일에 웃고 울고 화내고 따지고 그러다가 나를 되돌아보고.
남편이 데리러 온다고 기다리란다.
괜찮다고 했는데 마음이 쓰이나 보다.
현관 벽 옆 전광판에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며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 본다.
거울을 앞두니 기부라는 단어를 더욱 곱씹게 된다.
다른 한 벽엔 암환자들의 감사일기와 친절일기, 약속일기..
꼼꼼히 읽어보니 저절로 눈시울이 뜨겁다.
얼마나 힘들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달간 미션에 도전해서 저렇게
훈훈한 결과물을 보면 흐뭇할 것이다.
희망의 메세지를 보며 나또한 그들에게 용기와 박수를 보내며 병원 문을 나섰다.
가을은 점점 익어가고 내리던 비는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