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하늘이 어둡더니, 이미 캄캄해져 버린 오후에 올 겨울의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은 한 밤이 가까와져가는 지금은 많이 쌓였습니다. 가로등에 반사되는 하얀 눈으로 인해, 오히려 오후무렵보다도 밤인 지금이 더 밝아보입니다.
기압이 낮아져서인지 한 동안 몸이 제 컨디션을 한참 밑돌았습니다. 그만큼 더 빈둥거린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첫눈이 내린 오늘, 아이들이 학교 숙제를 마친 자리에 혼자 앉아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성경책을 꺼내 들고는 잠시 무엇을 할까 생각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성경책도 수시로 꽤 읽는 편이기 때문에 특별히 마음을 먹고 할 만한 일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성경책을 매일 한 장씩 써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만큼의 기간이면 한 권을 다 쓸 수 있을까하고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장수를 덧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쓰는 것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계속 몇 번이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떨까하고 말이지요.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내게는 어떤 성경책의 뒷 페이지가 사진처럼 떠올랐습니다. 그 성경책은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성경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신 것이 이제 세 달이 다 되어갑니다. 인생의 날이 육십이요, 강건하면 칠십이라는데, 현대인의 수명은 많이 늘기는 했지만, 팔십에 가까운 나이셨으니, 또한 강건하게 사셨으니, 감사할 일임을 아나,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라고 하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육신을 남겨두고 떠나간 후, 이 세상에 남겨진 물건들인 유품들을 말이지요. 옷가지들, 귀중하게 모아놓은 살림살이들, 그리고 또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자신은 소중하게 보듬어 왔을, 그러나 그저 평범한 물건들인 셈이지요.
그러나 그 물건들 중에 내 마음을 잡아 바라보게 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권의 노트와 성경책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트에 쓰여진 어머니의 편지들과 성경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겨 놓은 메모였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또는 내게 이메일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 노트에는 그렇게 보냈던 이메일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먼저 노트에 쓰신 후에 천천히 자판을 하나하나 두드려가며 메일을 작성하셨었겠지요. 그리고, 미처 메일로 보내지 못한 편지들도 있었습니다. 한 권의 노트를 거의 다 채울 정도로 어머니가 보내신 메일은, 우리 가족이 해외에서 보낸 6년의 세월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들과 손주들 그리고 며느리가 보고싶은 어머니의 어린아이같은 절절한 마음과 아들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사랑이 보였습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성경책의 맨 뒷면에는 성경책을 완독한 날짜와 횟수가 차곡차곡 적혀 있었습니다. 기록으로 보아 어머니는 그 성경책을 여섯 번 이상 완독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성경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나라는 한 개인의 하나님이신 주님은 어머니께도 동일한 주님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고, 그리고 어머니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어머니의 주님을 향한 마음과 기도를, 그리고 주님 안에서 보내고자 하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성경책을 펼쳐 뒷면의 백지에 오늘의 날짜를 적어 넣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나고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실제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 또 사람이겠지요. 그 사람들 중의 하나인 내가 어느 날,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주님의 곁으로 가게 될 때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나의 성경책을 펼쳐 나의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누군가도 내가 어머니의 성경책을 펼쳐 어머니의 삶을, 믿음 안에서의 삶을 생각하고 추억한 것처럼, 그 누군가도 나의 부족하기만 한 인간으로서의 삶보다는 주님 안에서 삶을 살고자 했던 나의 작은 믿음을 헤아리고 추억해 줄 런 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