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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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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의 아빠


BY 플러스 2005-11-13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햇수로 4년 전입니다.   아들 아이가 학교에 처음 입학한 해  아들아이와 친하게 된 친구들이 한 그룹을 이루었습니다.   씩씩한 여자아이도  두 명이나 있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 씩씩한 남자아이들이 만났습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막스였습니다.

 

그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 그룹의 아이들이 다 모여서 떠들썩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또는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다른 아이들의 부모 뿐 아니라,  막스의 아빠도 여러 번 볼 기회가 있곤 했습니다.   프랑스 남자,  벨기에 남자,  이탈리아 남자,  그리고 독일 남자들,  아이들의 국적이 다르니,  당연히 그들의 아버지들도 국적이 다르겠지요. 

 

 준수한 외모의 서양 남자들 중에서 막스의 아빠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익을수록  더 괜찮은 남자였습니다.    부드러운 회색이 섞인 밤색 빛이 도는 머리칼에  무엇보다도 선량하고 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또  자존감이 안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조용하나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잘생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부드러우나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독일인들 특유의 그러나 훨씬 더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떠들썩한 남자아이들의  유쾌한 1학년이 지나가고,   그들 중의 일부가  새로 생긴 유러피안을 위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몇 번 더 만날 수 있었던 기회가 지나가고,  그리고  남은 남자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서로 다른 반이 되어서도 서로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막스는 그렇게 남은 아이들 중의 하나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온순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막스는  우리 아이를 많이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몇 개 월 더 아래인 막스는 자신의 입양된 형 보다도 우리 아이를 형처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간 적이 있습니다.  두 아이는 밤 늦게까지 서로 도란거리며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그렇게 지내곤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막스의 아빠에 대해서도 또 막스의 엄마에 대해서도 점점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경제학박사이자   기업관련 컨설팅을 하는 막스의 아빠와는 달리,  막스의 엄마는 실제 현장의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보다 적극적인 일을 합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에   막스의 아빠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잠시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또,  능력이 많은 그녀는 자신의 직함과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이며,  또한 굉장히 바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녀와 막스의 아빠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이혼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막스의 아빠와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지 않은 채로,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녀의 말을 통해,  나는 그녀가 자신이  남편과 같은 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 대하여  마음에 꺼리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적으로 결혼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사는 부부가 많은 나라이지만,  그녀 자신은 법적으로도  부부로 되어 있기를 바란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막스의 엄마가 막스를 데리러 우리 집에 온 것이.   그 때,  그녀의 차에는 옆 자리에 한 남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젊은,  노란 머리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남편은 동료일 거라고 했으나,  일요일이었던 날인 지라,  동료와,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데리러 올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아들아이가 막스와 토요일을 함께 지내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하는 이야기 중에,  막스의 엄마  아빠가 따로 산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부터 막스와 그 형인 파울이 엄마와 따로 나와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 아이는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므로,  자신은 그런 사정에 대해 알거나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고 합니다.   아들 아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막스의 부모가 따로 살건,  함께 살건,  막스는 아들아이의 친한 친구인 것이니까요.

 

토요일인 어제는 학교에서 한 행사가 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각국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막스의 아빠를 보았습니다.   몇 달 만에 보는 그는  많이 야위어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는 그 얼굴도 많이 야위었고,  주름이 눈에 띄게 많이 늘어 있었습니다.   수척해진 그 모습을 보니,  그간 많은 고생이 있었을 것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눈에 띈 그는 옆에 한 여자와,  그러나  사귀게 된 지 별로 오래되지 않았는지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막스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일요일인 오늘 조금 전, 막스의 아빠가 막스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가   막스를 데리러 그 문 앞에 서 있을 때면,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안에서 스며나오는  훤칠한 키의  중후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부드러운,  밤색빛의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더군요.   스스로 조금은 더 젊어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검은 색 가죽바지를 입은 그에게서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습니다.   막스가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 십 여분의 시간 동안  현관의 안팎에서  아이들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는  나의 눈에 그의 그런 두려움이 보였습니다.   어제보다도 환한 빛 속에서 보는 막스의 아빠의 얼굴은  주름과  야위어버린 얼굴로 인해   안쓰러움이 들어 차마 마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막스의 아빠 또한 마음이 불안했던가 봅니다.   이전과는 달리,  그는 잠시 잠시 내 눈이 다른 곳을 향할 때에만  나를 볼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의식에 들어오자 나 또한 더욱 조심스럽게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  아이와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를 마친 막스가 집을 나가려고 할 때에,   내가 가볍게, 어쩌면 무관심처럼,  눈 조차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하고 말았을 때에,  막스의 아빠의  눈 주위에 붉은 물기가 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나는,  다시 마음을  담아   따뜻함을 실은 인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전히 잘생긴 그의 온화한 눈이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제야  안도하며  웃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