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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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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판단


BY 플러스 2005-11-02

나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착이 갑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보여주시사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 하는 크리스찬들 가운데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일런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목회자라고 하는 사람에게조차도  실망을 넘어 그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외국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한국인의 독특한 정신환경 때문인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리송할 때도 있습니다.

 

크리스찬 가운에 흔히들 세상의 인품이나 인격 마저도 인본주의로 몰아붙이며,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만이 최고의 가치인양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란 것이  일상이라는 우리의 삶 속에서 참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인 지 의아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믿는 바로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가려고 하는 진지한 자세,  자신의  내면의  부정과  부패함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  보고 인정할 줄 아는 용기,  그러한 과정에서  날마다 날마다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품과  인격,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세 안에 다 나타나게 된다고 믿습니다.

 

나는  어젯밤,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목자를  만날 날이  있으리라  위안을  해 보기도 하지만,  참 심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부패하기가 그지없어,  내면에  온갖  죄악의  싹이  도사리고 있다지요.   그러니,  우리에게는  스스로  들여다보아  그 싹이 자라날 기미가  보인다면  잘라내어버릴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모든 죄를 사함받은  크리스찬이라며,  자신의  그 내면의  악의 싹이 자라나는 것을  방치하고,   더 나아가 그로 인한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시키며,   또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상대의  탓을  하며 몰아세우려는 태도는 분명 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겠지요.

 

누가  크리스찬이라하여,  더군다나  중책을 맡은,  소위 말하는 기름부은 자라하여,  모든 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었을까요.   그것이  하나님이라면,  그 분이 어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실까요.   나는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  토의를 벌일만큼 잘 알고 있지는 않으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인격을 가지신 분임을 압니다.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우리 크리스찬들은  서로 간에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모든 허물과 행실을  다 사랑으로  감싸안아야 한다는 거지요.     자신은  아주 작은 지적 하나 조차도  참아내지 못하여  분을  내는  사람이  그렇게 남에게는  요구를 하며  목청을  높입니다.    왜 그 이야기에  열심을  낼까요.    자신이  죄를 지었으며,  그 죄가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없는  사랑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는 그것이 의아스럽습니다.

 

때로,  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비겁하게  숨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상태의  크리스찬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