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오래 된 옷을 꺼내 입듯 헌신발을 신듯 좋진 않지만 이젠 습관속에 길들여진 것들이 ... 그편하고 낡은 것들이 나라한다. 하지만 너.. 헌신발이나 헌옷은 비오는 오후 담배를 사러갈때,촌에 갈때, 혹은 거기서 퇴비를 주고 작업을 할때외엔 거의 착용하지 않았지. 좋은 곳엘 갈 때면 새옷과 새 신발을 신곤했어, 오늘처럼. 넌 지금 친구의 결혼식에 가고 없다. 나랑도 몇번 안면이 있는 친구였지. 나는 아침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지.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정말 머리가 아파왔어. 우리가 살고 있는 2층베란다 창가로 빗방울이 들어온다. 그래, 벌써 삼월이구나. 이 비가 오고 나면 조금 훈훈하려나.. 니가 뿌리고간 향수가 이방안가득 눅눅하게 퍼진다.
_일편: 떠나다,이곳을 _
얼만큼 자고 눈을 떳을까? 쭉 팔을뻗으려는데 침대맡에서 무언가 툭 소릴 내며 떨어진다. 아.. 그릇.. 커피잔과 토스트를 담았던 그릇이였지.. 몸을 일으켜 아랠 보니 접시는 두동강이 나있었다. 아직 커피잔은 그대로 머리맡에 쓰러져있다. 시선을 접시로 보낸다. 너와 나...
저 그릇은 아닐까? 멀쩡히 붙어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천원짜리 순간접착제로 붙어있는 그릇과 같은 사람. 혹은 연인... 등돌리면 서운해지고 쓸쓸해지고... 그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채 사랑이다, 사랑이다, 다시 잡고 너와 나 삶속으로 손잡으면 우리 삶은 자꾸 무기력해져 갔지. 솔직히 너와 나.. 오래 전에 사랑으로 부터 멀어진 존재들이였다.
삼월... 고달픈 일과가 내 삶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전에 나는 이번 학기에 주어진 일주일간의 겨울 휴가를 이 비좁은 이층방에서 그에게서 탈출해 보기로 했다.
차의 시동을 켰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봄과 체감하는 봄은 다른것인지 그리고 실내에서 느끼는 봄과 몸으로 느끼는 실외의 봄은 다른지 차안은 썰렁했다. 시동을 켜고 히타를 낮게 틀었다. 일요일인데 시내의 차는 막히었고 빗발이 세지고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혼자만의 자유.. 즐겨라, 후련하다 하면서 쪽지 하나 남기지 않은채 자꾸 그에게서 멀어져 가는 내 자아의 초상이 생경스럽다. 습관이란 무서운 거구나. 새삼스레 그의 저녁걱정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