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30년째 이사 열번째로 생애 첫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워낙 가난하게 살던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없어도 그렇게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신혼 첫집이 완전지하 단칸방으로 전세 9백만원짜리인데 그나마 3백만원은 시삼촌께 빌린 것이었다.
일년 살고나니 집주인이 보증금 백만원을 올려달라는데 그 돈이 없어서 시삼촌댁 문간방으로 이사를 갔다.
첫애를 낳으니 돈벌궁리를 하라고 출판사에서 편집이나 기사 쓰던 내게 어거지로 조그마한 서점을 차리게 했다.
죽어도 안한다고 했어야 하는데 거역을 못하고 빚투성이로 차린 서점이 한달에 백만원씩 적자가 났다.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빚만 늘어가서 할수없이 서점을 폐업하고 그 자리에 꽃집을 차렸다. 꽂꽃이사범증도 따고 부지런히 벌어서 빚을 갚아나갔다.
돈을 벌만할 즈음 둘째가 태어나 꽃집을 접고 우리 아이 둘과 동생네 아이 둘을 같이 키우는 조건으로 생계를 유지해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동네 저소득층 아이들 돌보는 곳에서 밥해먹이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밥이 너무 맛있다고 같이 자원봉사 하던 이가 반찬가게를 하자고 했다. 돈은 자기가 내고 나는 솜씨만 부리면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2600만원 권리금도 주고 보증금과 부대비용이 발생하니 돈을 대겠다던이가 내년 봄에 자신의 아파트를 팔면 줄 테니 나더러 돈을 다 대란다.
남편 반대를 무릅쓰고 시동생한테 2000만원을 빌려서 가진 돈을 다 털어 가게를 차리니 보름만에 동업자가 만세를 부르고 가버렸다. 손재수가 있으려니 별걸로 다 당하더라. 일단 들인 돈이 아까워서 일할 사람을 구해서 오년간 유지는 했는데 가게에서 팔다 남은 음식 먹은 것 외에는 별 이득이 없었다.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 일을 벌충이라도 하듯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시동생에게서 빌린 돈도 갚고 꽤 되는 돈도 모았다.
이번 입주에도 한부분을 보탰다.
반찬가게 오년은 여러모로 큰 상처가 되었지만 그로인해 더 단단해지고 타지역으로 이사를 안 가고 버틴 바람에 분양도 받게되어 아파트로 보상받았다고 본다.
지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