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방을 찾지 못했다.
엄마와 40여일을 함께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다스리지 못한 내 감정 때문에 엄한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화를 내고
집안 분위기 싸하게 만든 주범은 나였다.
아픈 어깨도 핑곗감은 되었지만 무기력한 나 자신이 문제였다.
슬그머니 걸음해 본 친구같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왜 그것이 눈에 띄었을까.
제목만으로도 울컥하는 매기의 추억.
주저없이 연극 기대평을 올려놓고 찬찬히 여러곳을 훑어보다가
아줌마의 날 행사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그래, 매년 이맘때면 아줌마의 날 행사가 있었지.
참석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는거 못하고 주저하는 마음에 아직 한번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
올해의 주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이었다.
행사에 직접 참가는 못했지만
시상식에 참석하여 수상자를 축하해주는 자리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요즘 나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듯이
매기의 추억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덕분에 토요일엔 대학로에서 매기의 추억에 젖었고
어제는 그 아줌마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아줌마를 빛낸 여러 님들에게 정성껏 박수쳐주었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아줌마의 날.
사이버작가방에서 쓰는 닉네임 외에는
나를 아는 사람도 없을테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도 사실 좀 떨렸다.
혼자 갈까 하는데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작은 딸이
함께 해주겠다고 저도 신청을 하여 같이 가게 되었다.
이번 의상 컨셉이 붉은색이라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붉은색이라고는
작년에 딸내미가 사다준 붉은색이 섞인 브라우스 외에는 없었고
딸은 팔찌 하나로 컨셉을 맞추었다.
미리 연락받은 번호로 좌석배정을 받고 간식으로 나눠준 백설기와 음료를 받고
기념촬영(?) 몇 장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오늘의 수상자 명단과 수상 내용이 담긴 상장이 걸려있었다.
재밌는 상 이름에 상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내용이
상을 받아 마땅하다 싶고 감동을 주는 상도 있었다.
아픈 시어머니께 드리는 며느님의 사랑이 느껴졌고
택시기사로 자식 키우신 어머니께 감사의 상을 드리는 아드님도 그렇고
엄마를 대신해 키워주고 결혼시키고 산후조리까지 해주신 이모님께 드린다는
조카님의 상도 그렇고
마지막 대상 수상자의 이름 앞에서 잠깐 가슴이 뛰었다.
왕꿋꿋내조여왕상 수상자가 사이버작가방에 새로미 님이었던 것이다.
비록 대면한 적은 없지만 새로미 라는 이름은 이곳 글방 님들은 다 아실 것이다.
배정받은 자리는 무대와 아주 가까운 자리였고
거기서 아컴 대표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와 나란히 앉은 어떤 분이 오늘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인
새로미 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미 님의 생활 에세이를 죽 읽어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간의 일상이나 근황을 글로나마 알고 있던 터라
아무리 민하고 낯가림 심한 여자지만
바로 앞에 님을 두고 못본척 할 수가 없었다.
새로미 님은 나를 모르실테니까 내가 먼저 가서 인사를 하는수 밖에..
말주변머리라고는 어리버리해서 뭐라고 하면서 말을 건네야 할지
새로미 님이시지요, 누구신지.. 모퉁이라고 합니다.
아..저를 아시더군요.기억하시더군요. 고마웠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듬직한 아드님도 같이 자리해주었어요.
아줌마들의 숨은 끼를 발휘하는 시간은
내내 나의 게으름과 수동적인 성격을 반성케도 했다.
악기를 다룰줄 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간 딸이 키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고
나는 드럼을 치고 싶은 충동은 일었는데 실천은 쉽지 않을 것 같다.픗~
은은한 팬플릇 연주에 발랄한 재즈댄스에
요즘 다시 부활하는 통키타 음악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면
아줌마를 응원해주러 오신 아빠밴드의 신나는 록밴드는
마음 속에 가둬두었던 감정을 발산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더 길었다면 조금 시끄러웠을수도 있었겠지만(^^)
적당한 연주로 적당하게 끝내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시상이 끝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대상자인 새로미 님의 시상식이었고
앞줄에 어떤 님 말마따나 글도 잘 쓰더니 말씀도 잘 하셨다.
왕관을 쓰고 붉은색 망또를 걸치고 인삿말도 좋았는데
그 전에 준비하신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영상 담당자의 실수였는지 시간 관계상이었는지 준비가 미흡했지 싶다.
우리세대에서는 약간 벗어난 신세대 가수 김태우의 무대가
마지막을 알리면서 행사 분위기는 고조에 달했고
나이답지않게 분위기 띄우는데는 제법 노련했다.
노래방에서도 자막에 익숙해진지 오랜지라
특히나 요즘 노래는 자막없이 따라하긴 역부족이었다.
생목소리로 튀어나오는 딸내미만 신났다.
마지막 기념촬영 때문에 엉겹결에 무대에 올라가보았고
새로미 님과 나란히 선 모습을 딸이 찍어주긴 했는데
이리저리 엑스트라들을 피하느라 애매한 자세와 표정이 역력한 사진이 한 장 찍혔다.
새로미 님은 여러 분들로 인사 받으시느라 바쁜것 같아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 건네고 행사장을 나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한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었지만
이틀 간의 외출로 마음은 선선했다.
한 집안의 딸이었다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아줌마라는 호칭 하나 더 얻은 삶.
아줌마는 그저 드세고 거친 여자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아줌마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약하면서도 강한 여성이다.
아줌마가 있어 건강한 가정이 있고
아줌마가 있어 건강한 사회가 있고
아줌마가 있어 건강한 대한민국이 있는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