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888

내 기도를 보태고 싶습니다


BY 모퉁이 2010-07-10

고향을 떠난지 올해로 꼭 스무해가 되었다.

경상도 출신인 두 사람이 충청도에서 십여년 살다가 서울로 온 지도 십 년째.

처음 이사온 곳에서 줄곧 살다보니 옆집도 윗집도 몇 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나와는 연배가 맞지않아  옆집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사람을 쉽게 사귀지도 못할 뿐더러, 딱히 마음 나누고픈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이웃에 몇 집은 남편이 먼저 친분을 두다보니 안 사람과도 친구처럼 지내긴 하지만

할 일을 미뤄두고라도 가서 차 한 잔 같이 할 정도가 아니어서 가끔 친구가 고픈 사람이다.

나이가 같다고 다 친구가 아니라 말이 통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인데

몇 동 건너 아우 하나는 비록 나이는 적지만 척 하면 내가 하고자하는 말을 알아듣고

공감해주고, 표현이 서툴러도 무슨 말인지 오해없이 들어주고

둘 다 같은 딸딸이엄마로서 통하는 부분이 많아 대화속에 공통점이 있어 좋다.

한 때 같은 통로 4층에 살던 사람이 내 고향후배이자 남편의 군대후배면서 직장후배기도해서

형님 아우 부르며 잘 지냈는데 이 사람도 두 해전에 이사를 갔다.

고향을 떠나보면 고향까마귀도 반갑다고 하더니

나 역시 고향동네 자동차 번호판도 반가울 정도였는데

고향사람을 같은 동네에서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았겠노.

고향음식이라도 하게 되면 한 그릇 올려주고픈 마음이 생기고

그 집 역시 고향에서 공수된 것들이 있으면 한쪽이라도 나눠주는 정이 있어서

참 각별히 지냈었는데 멀리는 아니지만 이사를 가고나니 만날 기회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남자는 남자들대로 여자는 여자들대로 친해져서 언니 동생처럼 지내던 그댁이

그나마 주말이면 등산을 겸해서 산책로를 자주 오게 되어 같이 합류하는 방식으로 만나서

산에도 가고 밥도 같이 먹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남자들은 쓸 데 없는 이야기라 하지만 여자들은 또 나름대로의 사는 이야긴지라

그렇게라도 풀어야 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댁에 사정도 들어보면 참 기가 막히다.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들어간 회사에 지금까지 25년째 다니면서

남편 월급과 합치면 꽤  괜찮은 형편이다.

친정붙이들도 누구하나 손 벌리는 사람 없으니

 네 식구 다소 풍족하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남자의 집은 좀 어수선하다.

위로 형님과 시누이가 각각 한 명씩 있고 아래로 시동생이 있으니

사형제의 세째이자 둘째 아들인 셈인데

어머님이 둘째아들인 이 집에서 거하시다 돌아가시고 남은 집은 형한테로 물려주었는데

형수와 사네 못하네 하던 형이 결국 별거에 들어가고 방황하던 형이

어느해 여름 바다낚시를 갔다가 사고를 당해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그러자 남은 두 조카를 오롯이 거두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카가 교통사로를 당해 현재 의식불명상태이고,

그러자 그나마 남편의 죽음 앞에도 나타나지 않던 형수가 와서 아들수발은 든다고 하는데

앞으로 병원비며 뭐며 걱정이 태산이다.

시누이 역시 생활이 그저그렇다보니 동생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시동생이란 사람도 장사를 한답시고 빌려간 돈으로 엉뚱한 데 쓰고 빚만 져서는

동서가 집을 나갔네 어쩌네 한다며 어디라도 털어놔야 속이 편할 것 같아 하긴 한다면서도

돌아가면서는 괜히 했나 싶은지 못 들은 걸로 해달라는 말을 할 때면 그 속을 이해할만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하루 정도는 꼭 바람도 쐴겸 산에 다녀오거나 가까운 길을 걸으며

체력도 다지고 답답함도 해소한다고 했다.

그때 가능하면 내가 동행을 하게 되면서

눈길에 미끄러지기고 하고, 봄꽃에 웃기도 하고,볕에 찡그리면서도

잎이 짙어감을 같이 보아왔다. 그러니까 3주 전이 되겠다.

 일찌거니 산에나 가자고 문자가 들어왔다.

이웃에 나랑 말이 잘 통한다는 아우와 함께 셋이 시간을 맞췄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가정사 이야기를 하는 날도 많다.

이웃 동생이 친정이야기를 먼저 했다.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실련지 이상한 말씀을 해서 딸로서 못할 소리를 하고 왔다며 우울해했고

딸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위로해주고, 재산분배로 오빠가 아닌 올케와의 껄끄러운 이해관계로 속 끓는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다가, 흉흉한 뉴스로 돌아가 딸 가진 엄마로서 걱정을 하다가,이번엔 이사 간 동생이 심각하게 말을 꺼낸다.

직장에서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재검이 나온 것이 있어서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 의뢰를 해놓은 게 있다고 했다. 유방에 멍울이 잡힌다고 했다.

별다른 감정없이 편한 말투로 평소와 같은 이야기감 정도로 가볍게 나눈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각본에 나와있기라도 하듯이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앉은

나무밑의 세여자.

괜찮을 거야. 요즘 멍울 가진 사람이 많댄다.

멍울이라도 다 큰병은 아니랜다. 간단한 수술도 있다 하더라.

검사결과 기다리는 시간이 피말린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흘 뒤 결과보러 가야된다는 말을 끝으로 우울한 이야기는 접으라는 듯 비도 그치고

소나기 더 오기 전에 얼른 집으로 가자며 뛰었던 3주 전 그리고 오늘.

검사결과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주였다.

믿어지지 않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는데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고

그래도 전화를 해야겠기에 마른침 삼키며 누른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내가 가마고 조심스럽게 넣은 문자에 괜찮다는 힘없는 답이 들어왔고

기운없이 누워있을 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엉뚱하겠지만 산책이라도 가자고 넣은 문자에는

더워서 싫다는 답이 들어왔다. 더 더운 날에도 다녔는데..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수술날짜가 잡혔다는 소리를 남편이 전해주었다.

전화를 넣어봐야겠는데 저번처럼 또 신호음만 들을까봐 망설여졌다.

좋은 일에는 쉬운데 이럴땐 내 역활이 참 좁다.

회사로고송이 울리는 멜로디가 명쾌하게 들린다.

다행이다.쉽게 전화를 받아준다.

생각보다 담담하다. 아...정말 고맙다.

결과 듣고 이틀을 혼자서 울었단다.

왜 눈물이 나지 않았겠노.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라고 묻는다잖아.묻고 싶지 않겠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왜?

그렇게 헌신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에 대한 보상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억울하다고 왜 따지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담담하단다. 웃기도 한단다.

그래,믿고싶지는 않지만 사실이라면 받아들이고 이겨내자.

말주변도 없지만 긴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짧게 끝냈다.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했더니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기 쥐었던 손이 축축해졌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할 일 없는 사람마냥 방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흐린 시선만 굴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비가 다시 오려는지 후덥지근 끈끈함이 몸을 끌어안고 들러붙는다.

오늘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시간을 주려고

남편도 아이들도 제 약속들이 생겼나보다.

저녁은 먼저 먹으라는 안내가 들어오지만 밥생각은 없고 자꾸 입이 마른다.

물을 꺼내려 일어섰다가 거울 앞에 서서

민가슴이다시피한 내 가슴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녀에게 용기를 주십사 하는 기도를 보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