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딸아이가 언제부턴가 야구에 재미를 붙이더니 며칠전에는 야구장까지 갔단다. 아직 마음 정해진 팀 없이 친구따라 간 야구장이라 친구가 응원하는 팀인 기아 응원석에 앉았단다. 때마침 기아팀이 엄청난 점수로 지던 날이었고 다음날은 반대로 큰 점수로 이겼다. 그날 이후 서울지역팀인 두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큰딸과 언니보다 먼저 야구장에 다니기 시작한 작은딸이 요즘 내가 틀어놓은 야구 중계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도 케이블티비에서는 야구 중계가 한창이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LG와 롯데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자갈치시장에 해운대, 태종대, 오륙도, 용두산공원,광안리...뭐 여러 곳이 있겠지만 그 중에 또하나 사직구장이 유명하고 사직구장 하면 또 야구가 따라온다. '나는 갈매기'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도 있었는데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대충 들었다. 나는 갈매기의 속에는 난다는 뜻과 나를 칭하는 뜻이 있다고 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처음 선보였다는데 나는 이듬해 부터 티비 관전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전에는 고교야구가 인기절정에 있었지만 프로야구가 생기고 부터 고교야구는 티비중계도 거의 없어지고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구장에 고교야구 관전을 갔더니 학부모들과 학교 관계자들이나 응원석에 있었지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남편은 전형적인 부산싸나이다. 그는 롯데야구팬 중의 한 사람이다. 주홍색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신문지를 찢어 응원도구를 만들어 지칠줄 모르는 응원부대는 프로야구 8개 구단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평이다. 문성재의 노래 '부산갈매기'는 언제부턴가 롯데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고 꼭 그런 이유는 아닐진데 남편의 애창가요 중에 부산갈매기가 있다. 이런 남자와 한 집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야구 관전을 곁눈질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세 시간이 넘도록 치고 받는 경기가 지루해서 싫었다. 야구의 룰을 모르니 답답하고 재미도 없었다. 이렇고 저렇고 조금씩 알려주긴 했지만 이해하기 전까지는 점수판만 보고는 몇대 몇으로 이겼구나 졌구나 했을 뿐이다. 지금도 상황판단 하는 데는 해설가의 도움을 받는 수준이지만 볼카운트를 셀 줄 알고 보기 시작하니 요즘은 내가 더 즐겨보는 프로가 되었다. 공으로 하는 운동 중에 유일하게 사람이 점수를 내는 운동이 야구라 했다.
남편도 딸도 퇴근이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녁을 혼자 먹어야 될 판이다. 무쳐놓은 취나물에 마늘쫑 초절임을 꺼내들고 티비 앞에 앉았다. 2회 말에 들었는데 0대 4로 롯데팀이 이기고 있다. 체널을 고정시키게 한다. 응원석에 펼쳐진 각색의 응원구호를 보면 아이디어도 참 기발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표현들로 야구장의 열기를 높이는데 한 몫을 한다. 새벽밥 먹고 야구장에 가기 위해 나서는 할머니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까지 데리고 나온 응원단 속에 멀리서 보내는 응원 박수도 한 몫 끼워본다.
경기야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실책으로 인하여 패하는 날은 우리집에 갈매기는 흥분 게이지가 높아진다. 감독은 가만있는데 혼자 투수를 바꾸고 포수를 교체하라고 명하고 난리다. 응원팀이 이기면야 기분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설령 진다해도 좋은 마음으로 격려하고 즐기면 된다. 잘 던지고 잘 받고 잘 치고 잘 뛰고.. 그러고도 지면 어쩔수 없다. 그러나 실책 뒤에 내 주는 점수는 속상하다. 오늘 얻은 롯데팀의 점수도 상대팀의 실책으로 얻은 점수가 있다. 어제는 졌지만 오늘은 응원팀이 이겼다. 내일은 또 다른 팀과의 3차전이 벌어질 것이다. 오늘만큼만 해주면 좋으련만 누구말마따나 받쳐주는 투수가 없어서, 실책이 잦아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최동원 선수같은 투수 한 명 어디 없냐고 물어대는 남자가 없어서 조용하긴 했는데 야구든 축구든 혼자 보는 재미는 조금 모자란다. 새우깡을 씹어가며 맥주 깡통 찌글리가며 그리 봐야 되는데... 하지만 혼자서도 야구를 보고 즐겨가는 나도 이제 점점 갈매기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