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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이 여든셋


BY 모퉁이 2010-04-07

십여 년 전,시외전화 정액제를 정했다.

시댁이나 친정이 모두 각처에 있고 그외 몇몇 친하다 여긴 친구들도 그렇고

그땐 전화요금에 대한 부담없이 수다나 안부를 전할수 있어 좋았다.

사용요금보다 한참을 더 쓰고도 일정액만 내면 되는 정액제 혜택을 톡톡히 보았던

몇 년이 지난 지금, 요즘은 그 안부나 수다도 줄어들어

약정금액에 못 미치는 금액을 쓰면서 요금은 꼬박꼬박 물고 있다.

그럼에도 그 정액제를 해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불쑥 엄마의 근황이 궁금할 때면 전화기를 들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엄마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도 아니었고

어른들 나오는 티비프로를 보는 중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도 하지.

설겆이를 마치고 여덟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인데 전화는 한참을 혼자 울어댄다.

'어딜 가셨나, 마실 나갔을 시간은 아닌데....'

그럼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전화기 너머로

금방 스러져가는듯한 목소리가  목줄을 넘어 들려왔다.

순간 찌릿한 소름이 돋았다.

엄마를 몇 번이나 불러대도 응 ..응...만 하시다가 철커덕 끊어버린다.

뭔 일이 있나,,다시 누른 전화에 여전히 같은 대답만 하다 또 끊는다.

벌써 세번째 울린 전화에서야 겨우 엄마 목소리가 몇 마디 들렸지만

여전히 힘든 기력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감기 기운이 좀 있어 일찍 자리에 누웠었단다.

몸에 감기도 있겠지만 마음의 감기도 깊을 거란 생각에 목이 치민다.

대충 몇 마디 대화를 하였지만 엄마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다.

뭐 다섯 딸 중에 하나이겄거니 하셨겠지.

이럴땐 또 막내동생을 불러 엄마를 부탁하고 싶지만 내 염치도 바닥을 친지라

전화기만 쳐다볼 뿐 번호는 누르지 못한다.

날이 밝기까지 기다렸다 울린 전화는 부재중이고 반나절이나 지났을 무렵

다시 건 전화속에 엄마 목소리는 어제와 딴 사람이었다.

이웃집 할머니가 찰밥을 가져와서 먹었고

그 할머니와 지금 화투놀이 중이라고 일러주신다.

전화기 너머로 그 할머니의 음성이 같이 들려온다.

찰밥 가져다 준 이야기에 뭐하러 그런 이야기까지 하냐는 말씀이다.

고맙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엄마는 또

전화요금 걱정에 철컥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으신다.

딸과의 전화보다 친구 할머니와의 놀이가 더 재밌으신 모양이다.

멀리 사는 자식이 이웃보다 못한 예가 여기 있다.

 

사실,얼마 전에 지인의 퇴임식에 참석하러 친정쪽에 갔었다.

친정 일로 가면 친구들을 못 보고 오고

친구들 일로 내려가게 되면 친정식구를 만나고 오기가 쉽지 않은 일정이 많다.

해서 이번에는 친정에 아예 말도 없이 비밀행차(?)가 되고 말았다.

엄마를 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임식 참석 후

형님댁 조카를 데리러 가느라 엄마께는 들르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내가 가자는 말도 안했지만 남편도 하지 않았고

조카 데리러 가자는 말에 얼굴이 환해지고

돌고 돌아 서울로 와서는 조카의 자취방을 점검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빠듯하기는 했다.

후회는 늘 한 발자욱 뒤에 따라다니는 그림자인가.

어제저녁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짧게라도 보고 오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가 몇 년전부터 이상한 말씀을 잘 하셨다.

사실인지 아닌지,우연히 들렀다는 어떤 스님이 엄마 나이 여든셋이 고비라고,

그때면 아마 이승을 떠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단다.

작년 아버지 기일에 내려갔다가 목욕을 시켜드렸더니

깨끗이 씻은 김에 그냥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올해 그 나이가 되신 엄마는 이번 생신에도 혼잣말처럼 그러셨다.

여든셋을 주문처럼 외고 있으면서 그 나이에 대한 집착을 나쁜쪽으로 믿고 계신다.

이럴땐 엄마 나이를 잊었으면 좋겠다.

 

엄마를 뵈러 가기 며칠 전, 평소 잘 꾸지도 않던 꿈이 자꾸 걸렸다.

엄마와 놀이동산에 놀러갔더랬다.

어쩌다가 사람 많은 곳에서 엄마와 내가 헤어졌고

엄마가 어딘지 모를 곳에 있다고 매우 불안한 소리로 연락이 왔고

마침 근처에 있던 젊은이가 엄마가 계신 곳을 전화로 알려주었는데 

내가 찾아간 곳은 많은 버스가 출발하는 어느 터미널이었다.

경주행, 부산행, 대전행..

전국으로 가는 버스가 즐비한 곳에서 엄마와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잠을 깼는데 과연 그 꿈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터미널은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인데 엄마가 어디를 떠난다는 뜻인지.

시작한 곳은 분명히 놀이동산인데 끝나는 곳이 터미널이라니

해몽도 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고 엄마 생신을 맞아 언니 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흘린 내 꿈 이야기가 하마터면 슬픈 이야기가 될 뻔 했다.

아무 버스도 타지 않은 것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니 앞뒤도 맞지 않는 꿈에 괜한 기운을 소진한 듯도 했다.

 

엄마 나이 여든셋.

아버지 없이 삼십 년을 사셨다.

물려받은 재산이라고는 아직 여물지도 못한 딸 다섯 뿐이었던지라

사는 것에 근근하느라 엄마는 늘 피곤했었고 지친 몸이었다.

자식이랍시고 제대로 거두지도 못했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고

한 때는 일찍 가신 아버지와 엄마에 원망도 많았었다.

왜 울엄마는 다른 엄마처럼 악착스럽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의지하나 싶어 미웠다.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는 엄마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

바라보는 우리로서는 늘 뒤쳐지는 엄마였다.

결혼은 당연히 내 힘으로 해야했고

거기다가 엄마를 부양하고 동생을 보듬어야 했다.

어찌보면 엄마는 우리에게 해준 게 없다.

아버지 무덤가에서 흘리던 작은언니의 눈물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 눈물과 아픔과 회한을 남겨준 엄마가 이제 나이 들어 힘없는 노인이 되어있다.

돌아보면 아픈 세월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안타까운 내 엄마일 뿐이다.

여든셋의 늙은 엄마가 혼자 작은 방에서 웅크리고 자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는 티비소리가 유일한 기계 속의 사람소리이고

어쩌다 한번씩 삐꿈 들여다보고 용돈 몇 푼 건네드리고

잘 씹지도 못하는 고기 잘게 썰어 얹어 드린다고 제 할 몫 다 한 양

자식이랍시고 엄마를 부르고 이렇게 청승스레 엄마를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오늘도 구부정한 허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아이고..아야야..를 몇 번이나 외쳤을 것이다.

그 무거운 나무짐을 이고도 흐트럼 없이 꼿꼿하게 걷고

끙~소리 없이 단숨에 발딱 일어나 새벽 군불에 뜨거운 물 데워

'세수해라~' 소리로 아침잠을 깨우던 엄마의 새파랗던 목소리는

오간데 없고 엄마는 지금  여든셋의 일기를 그적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