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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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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국수


BY 모퉁이 2010-01-31

어느 날 신문 한쪽면 전체가  맛있는 국수집 소개 일색이었다.

유명한 식당도 아니고 허름한 분식집 분위기의 국수집이지만

그 맛은 몇십 년 노하우로 우려낸 진짜맛이라는데

유독 국수를 좋아하는 남편 그 기사를 놓칠리가 없다.

어디는 너무 멀고 어디는 아주 멀고 어디는 엄청 멀고

집에서 가까운 몇 곳을 체크해 놓았다가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한다.

 

여름이면 열무국수를 해먹고 겨울이면 따뜻한 멸치국물 우려내어

김장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 찔끔 흘려넣고 무친 고명만 올려줘도

군말없이 후루룩 잘 넘기는 식성이 참 편하기도 하다.

반찬이 애매해서 뭘 해먹을까 고민을 하면

기다릴새도 없이 ,국수나 삶아먹자 고 한다.

국수나 삶아먹자고?

국수는 삶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줄 아냐고..

국물 우려내야지 고명 준비해야지 말처럼 그리 쉬운 음식이 아닌데 말이지.

이러는 내가 해낸 꾀가 열무김치 자작하게 익혀놨다가 그 국물에 비벼먹는 것과

 김장김치 무쳐 올려먹는 초간단 국수법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떤땐 귀찮아서 쩔쩔맨다.

남편은 그 간단한 국수 한 그릇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불쌍한 사람이 된양

내게 국수 먹자는 말도 뜸을 들여서 하는 것 같다.

남이 보면 내가 엄청난 악처인 줄 알 것이다.

 

알타리무를 통째로 말갛게 물김치로 담았다가

무는 송송 채를 썰고 그 국물에 국수를 말아주면

크~맛있는 소리를 내며 먹어주는 남자.

처음엔 남편만 해주고 나는 비빔국수를 해먹던가

따로 밥을 해서 먹곤 했는데

어느날 삶은 국수가 남아서 남은 무채를 넣고 참기름 한방울 흘려서

먹어봤더니 아주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도 한 젓가락씩 먹어보더니

이제는 그 맛에 반해 아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고

남편이 좋아하니 열무김치를 담거나 알타리를 사는 날이면

국물을 넉넉하게 넣어 국수말이용으로 쓴다.

 

휴일 낮, 늦은 아침을 먹긴 했지만 점심을 넘기자니 아쉽다.

아이들은 떡볶이를 해먹자고 냉장고를 뒤지고

운동하러 간 남편이 곧 들어왔다.

먹다가 남은 국수가 한 움큼은 되겠다.

네 식구 양은 안되고 두 명은 족히 먹겠다.

얼마전에 친구가 보내온 된장 고추장 박스 안에

내 손바닥만한 무로  담근 동치미를 국물째 밀봉해서 보낸게 있다.

냉장고 안에서 살얼음을 살짝 덮어쓴 채 얌전하기도 하다.

후다닥..국수를 삶아 동치미무를 채썰고 국물에 생수를 섞어 간을 맞추어

예의상 참기름도 한 방울 띄우고 쪽파를 송송 다져 올려내니

남편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에구~

저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을리했다.

밥은 한 공기면 되는데 국수는 곱배기에 두 그릇도 용납하는

대단한 위를 가진 사람이다.

 

"동치미 남았나?"

또 해달라는 주문이겠지.

식탁 위 메모지에 잊어버리지 않게 [국수]라고 적어놓는다.

마트에 가면 국수 한 다발 꼭 사다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