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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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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가고 싶네


BY 모퉁이 2009-09-29

남편의 정년을 앞두고 시골에 터를 키워오던 친구가

요즘 농사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하루가 바쁘다.

처음엔 연습삼아 이것저것 푸성귀를 심기 시작하다가

점점 가짓수가 늘어났으니

이게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을텐데

수확을 했다고 이것저것 싸서 보내올때면

받아드는 내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시골에 빈 집을 하나 얻어서는 별장처럼 쓴다며

며칠만이라도 같이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편지마다 마무리를 그렇게 쓴다.

요즘 이 친구의 근황을 듣다보니 같이 지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재미있게 세세하게 읽다보니

이 친구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참 말이 없는 아이였다.

키가 커서 뒷줄에 선 이유로 번호가 내 앞에 두번째 였지 싶다.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고, 특기도 보이지 않았고

그나 나나 별로 존재감은 없었지 싶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데 하얀 쌀밥을 가져오면서도 숨겨 먹었다.

나는 그 도시락이 탐나고 부러워서 숫기라고는 솜털만큼도 없던 내가

그 아이와 점심을 같이 먹기 시작하면서 친해졌나 싶다.

친구도 없이 혼자 다니던 그네 집에 놀러갔다.

한 겨울이었는데도 외투도 없이 시린 손을 교복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디던 아이.

친구네는 시장에서 쌀집을 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시장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 물통을 채우느라

나와 놀 시간이 없었다.

나도 들통을 들고 나가 물 받는 일을 도왔고

그 댓가(?)로 그녀는 하얀 찰밥을 해서 주었다.

그 재미로  수시로 그 집에 드나들었고 어느새 둘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어릴 때 엄마를 잃었고 그때 집에 계시던 엄마는 새엄마였다.

쌀집도 잘 되었고 아버지도 직장이 있어서 쪼들리는 집이 아니었는데도

친구는 겨우내 얇은 교복바람으로 지냈고

집에 와서는 집안 일을 하고 심지어는 쌀배달까지 해야했다.

공부할 시간도 없고 열다섯의 소녀는 늘 피곤했다.

학교에서는 졸고, 집에서는 일하고..

그러다 어느날 가출을 했다.

나보다 더 절친한 친구가 있었더랬다.

그 집에서 열흘을 머물면서, 같이 공부를 하고 지내더니

그 달의 시험점수가 껑충 올라 선생님도 놀라셨단다.

그렇게그렇게 세월이 흘러 진학은 꿈도 못 꾸고

결국 집에서 쌀가게를 도우며 커다란 짐자전거에 쌀가마니를 배달할 정도로

당찬 여장부로 변해가고 있었다.

스물셋.

결혼을 하겠단다.

처음으로 소개한다며 선 본 남자를 소개시켜주었고 청상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결혼이라는 해방구를 찾아 집을 떠나고 보니 기다리는 것은 모진 시집살이였다.

열다섯살에도 견딘 모진 삶을 스물셋인데 못 견디랴.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그녀를 또 다른 삶으로 인도했다.

그동안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끼를 발견하여

 판소리와 한국무용에 심취해서 이곳저곳 불려다니는 인물이 되었고

넓직한 텃밭에서의 일상이 즐겁다며 비명소리 전해주는 일에 내가 다 신난다.

지금도 풀리지 않은 실타래같은 고부갈등으로 몸서리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읊으면서 조아리며 산다는 그녀.

갖가지 장아찌를 담아놓고, 온갖 약초로 차를 말리고

어릴 때 먹던 까마중이며 구찌뽕은 또 뭔지 알려주고 비단풀 이야기까지 곁들이며

언제든지 꼭 좀 다녀가라며 하루 이틀 쉬어가면 더 좋다는 당부를 오늘도 내려놓는다.

그러게....꼭 한번 가고 싶네.

한 살 더 먹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네.

오랫만에 너의 그 넉넉한 손맛 꼭 좀 보고 싶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