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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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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째 오지 않는 손님


BY 모퉁이 2008-09-25

키만 멀대같이 히멀건하게 컸던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다른 발육이 더뎠다.

젖몽오리도 늦게 나와 민가슴이었고, 생리또한 늦어서 체육시간에 교실 지킴이하는 친구가 부러운 날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가을소풍을 다녀온 날 저녁에 내 팬티를 보고 흠칫 설레임을 느꼈다.

거무티티하고 끈적한 뭔가가 나를 울컥 침을 삼키게 했다.

가정시간에 생리대 접는 법을 배웠고, 친구들이 흰색 실내복바지 대신에 교복치마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놀래거나 불안하기 보다 설레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한테 말하면 축하한다고 해줄까?

언니한테 말하면 생리팬티라도 하나 사줄까?

실내복에 흔적이라도 남겨 친구들이 알게 할까?

엄마한테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언니한테 입도 못 뗐는데,친구들한테 들켜보지도 못했는데, 그 두근거림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팬티가 깨끗해졌다.

그리고 꼭 3개월 후 새해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되던 날  붉은 선혈을 처음으로 터뜨렸다.

드디어 여자로서의 성징이 내게도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초경은 달도 어기지 않고 제 날짜에 손님으로 찾아왔다.

그 신비로움으로 어른이 되고 두 딸을 낳았다.

풍만한 가슴은 아니었지만 부풀대로 부푼 가슴에서는 모유가 샘처럼 뿜어져나와 두 아이 모두 모유로 키우고도 남아 흡유기로 젖을 빼내기도 했다.

큰아이는 13개월을 작은아이는 10개월을 젖먹이로 키웠다.

젖이 마르지 않아 젖 떼기가 힘들어 의사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렇게 겨우 말린 젖은 중학시절의 민가슴처럼 바짝 말라버려 지금은 뽕이 들어간 브래지어를 한다.

이제 내 나이 오십.

친구들 하나 둘 폐경이니 갱년이니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해댄다.

심한 갱년기 증상으로 불면증 때문에 하루가 고통스럽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내가 잠을 잊은 날도 있었다.

가끔 일박을 하는 모임에 가서 온천이라도 할라치면 몇 명이 꼬리를 빼는 사람이 생겼었다. 여럿이 모이다보니 한 두명 꼭 그 날(?)이 걸리는 것이다.그런데 언제부턴가 단체 목욕이 가능한 날이 더러 생기더니 열한명 멤버 중에 반 이상이 폐경이 된 상태에 이르렀다.

약물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나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람도 있어 나도 후자에 손을 들고 싶다고 했다.

심한 갱년기를 겪은 사람 말에 의하면, 머리카락만 아프지 않고 다 아프단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라 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일에 민감할 필요가 없지 싶었다.

 

33년을 걸르지 않고 찾아오던 손님이 두 달째 안오고 있다.

가끔씩 눈치없이 찾아올 때면 내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소식을 끊을줄 알았다면 찾아올 때 다정하게 맞아줄 걸.

귀찮아 하고 짜증내고 타박했던 마음이 미안해진다.

이렇게 발길 끊을려고 찔끔찔끔 흘리다가 와락 소낙비처럼 쏟아내다가 그렇게 그렇게 내게 이별을 암시했던가 보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또 찾아오기도 한다길래 언젠가 느닷없이 찾아올까봐 어제도 오늘도 나는 짙은색 바지를 입고 외출을 한다. 가방 속에는 너를 맞을 준비를 항상 하고서...

네가 오지 않아도 아직까지는 천연덕스럽게 나는 잠도 잘자고 웃기도 잘하고 혼자서 놀아도 심심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가끔 가슴이 뜻뜻해져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이내 들여다놓는 일은 있어도

갱년이란 틀에 가두고 싶지는 않다.

 두 달째 오지 않는 너를 이제 천천히 잊어야 되려나보다.

어느날 갑자기 몇 달을 더 다녀가주면 또 맞이하면 되고, 이러다 아주 가버린다해도 억지로 붙잡는 처방은 받고 싶지는 않다. 서운하지만 이제 너를 보내마.

갑자기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