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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훨훨 날아라


BY 모퉁이 2006-08-23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뭔가 푸더덕 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도 하다가 조용하기도 했다가,

섬뜩할 정도는 아니지만 심상찮은 분위기임은 분명하다.

 

거실 방충망에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베란다 상황을 살폈다.

이상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베란다 밖 방충망에 새 한 마리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순간, 베란다 밖 방충망에 붙어있던 새가 베란다 안을 공중날기 시작했다.

밖에 있는 줄 알았던 새가 베란다 안쪽 방충망에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한 바퀴 돌더니 방충망에 헤딩을 하고, 또 한번 돌더니 그 자리에

지 머리를 쳐박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새털 한두 개가 바닥으로 사뿐히 아주 조용히 내려 앉았다.

 

도대체,저 새는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우리집 베란다 안으로 침입을 한 걸까.

어떤 경로로 우리집 베란다까지 날아 와 방충망도 유리문도 분간 못하고

지 머리를 저렇게 모질게 들이 박고 지 터럭을 가벼이 날려 보내고 있는 건가.

새 머리를 들이댈 정도의 구멍이 있을 곳이 없는데,

이런 경우에도 불가사의라는 말이 어울리나 모르겠다.

어제 낮에 종일 열어둔 창으로 들어와 밤새 끙끙대다

어미일지 아비일지, 아니면 그의 자식들이

가출 신고 들어가기 전에 귀가 하려 저리 애쓰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는 다른 어떤 추리를 해보려 해도 야무진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저 새를  밖으로 날려 보내는 일이다.

방충망 그 작은 구멍에다 옴팡지게 구부린 발이 안스럽고

뾰족하게 벌린 입으로는 '살려주세요,보내주세요.' 하며 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그런데 말이지, 나는 얼른 너를 내보내고 싶은데 말이지,

내가 베란다 창을 열어 너를 날려 보내고 싶은데 말이지,

내가 베란다 창을 열어주기 위해 거실 문을 여는 순간,

너의 그 작은 머리가 우리집 거실을 바깥 세상으로 착각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전에 우리집 거실로 날아들까 그것이 걱정이 되는 거야.

내가 덩치는 하마같애도 강아지도 못 만지고 병아리 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희한한 덩치거든. 방충망에 바짝 달라붙은 네가 무척 불안해 보이지만

나는 너를 헤코지 할 위인은 아니란다. 그런데,정말, 난 네가 겁 나.'

 

거실 문을 잡고 몇 번이고 시도를 하는 동안

털 오라기는 떨어지고, 내 손은 땀으로 흥건하다.

만물은 다 제 앉을 자리가 있는 법이여.

사흘 떠난 여행도 내 집에 와서야 완성된 여행이 되던 것처럼

내가 아무리 저 새를 겁주지 않고 모이를 주어 키운다 해도

새는 날아야 하고 저들의 둥지에 앉아서야 편한 잠을 잘 것을.

저 아무리 낮은 새 머리라 한들 안을 모르고 밖을 모를까.

자...날려 보내는 거야. 날아갈 수 있게 창문을 여는 거야.

휴,,숨을 크게 쉬고 삑~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베란다 방충망을 열어제키고

얼른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내 행동은 성공했다.

깜짝 놀란 새는 다른 구석으로 날아가 이젠 그 쪽에서 다시 날기를 시도한다.

아~안타깝다. 저 날아갈 문를 열어 주었음에도 그 길을 찾지 못한다.

살면서 나 역시 저렇게 돌파구를 찾지 못해 해맨적이 있었지.

그런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을까.

새나 나나 크게 다를 게 없다.

 /날아라 새야. 제발. 저 활짝 열린 창으로 날아라/

나의 읖조림이 있고도 두 번을 더 저 머리를 쥐어 박고서야

화들짝 퍼득인 날개짓이 탈출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떨어트린 털은 아주 작고 얇은 털이었다.

 

어떤 곡절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집 베란다에 갇힌 순간

그 넓은 세상이 갑자기 좁아 졌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날아도 날아도 날아지지 않는 자신의 날개를 의심하지는 않았을까.

털이 빠지도록 부벼댄 머리에는 혹이 몇 개나 났을까.

한번 머리 박기 할 때마다 떨어져 앉던 얇은 터럭만

새가 머물고 간 흔적을 남겨 놓았다.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한 새는 뒤 한번 돌아 보지 않고 날아갔다.

내 비록 너를 내 손 위에서 날려 보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너의 탈출기에 한 힘은 보탰는데

그러니 한 번은 뒤돌아 볼만도 한데 말이지..

새는 새여. 허허허.

그래도 날아라 훨훨 날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