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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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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BY 모퉁이 2006-06-27

 

드디어 왔다.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손님이건만

한번 왔다 하면 지겨울 정도로 머무는 바람에

크게 환영 받는 손님이 못되는 장마.

 

출근 길이 우중중해서 우산을 하나 챙겨 주었다.

아이들 우산은 쬐끄마 해서 머리나 제대로 감출까 싶은데

남자의 우산은 작은 집 지붕만하다.

옛날에 울아부지가 내게 사주신 우산도 크다 했는데

그보다도 더 큰 우산이다.

내가 사지는 않았는데 어디서 얻어 왔는지

길다란 우산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손잡이가 달아난 채 빈 손이었다.

우산 살도 멀쩡하고 겉도 깨끗한데

다만 손잡이가 없어서 생을 다한 몸이 되어

쓰레기로 분류되어야 했다.

 

어릴적 생각이 났다.

제대로 된 우산이 아니었어도 서로 챙기려 쟁탈전이 벌어졌다.

우산 살이 녹슬고 우그러져도 상관 없었다.

비닐 우산을 쓰던 시절에, 살 좀 우그러지고 녹 좀 슬었으면 어떠하리.

그나마도 모자라서 우산 하나에 두 사람 어깨 부딪쳐 가며

머리만 들이 밀고 어깨와 등은 비에 젖어 춥던 시절이 며칠 전 같다.

 

비 온 뒤 반가운 햇살과 함께 단골처럼  찾아 오는 손님은

우산 고치는 아저씨였다.

낡은 우산살 하나가 아저씨 손에서 요술을 부리면 우그러지고 부러진 우산이

활짝 핀 나팔꽃처럼 새로 피어나는 신기함이란.

고쳐쓰기보다 버리는 것에 더 익숙해진 요즘

우산 수선 하는 일도 사라진 직업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세상 좋아졌다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뭐든 넘쳐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산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래서 좋은 일도 많았다.

엊저녁에 언니와 싸워 볼이 부었더라도

살 부대끼며 한 우산을 쓰고 학교까지 가다보면

어느새 뽁뽁거리는 발장난에 신이 나 깔깔대며 어제 일을 잊어버린다.

내 30년지기와도 우산 속에서 맺어진 것을...

 

이름하여 나의 연애시절 어느  약속이 있던 날.

비 소식이 있어서 우산을 챙겼었다.

마중 나온 남자의 손에도 우산이 들려 있었다.

각자 우산을 펴야 하나, 하나만 펴야하나.

먼저 펴 든 남자의 우산 속에 둘이 들어가고

내 손에 우산은 눈치없는 꾸러기 역할을 했다.

어깨에 빗방울이 좀 떨어지면 어떠리.

차라리 우산이 더 작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이들이 나가면서 들고 가는 우산은

바람이 세게 불면 뒤집어 질 듯한 삼단짜리 우산이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는 좋겠으나

아무래도 장마철에는 약해 보인다.

멀뚱히 서 있는 커다란 우산이

주인을 찾지 못해 민망한 듯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