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일찍 관리실에서 안내 방송을 했다.
예고된 행사인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는지
아파트 각 통로 입구 화단에 묘목심기를 하니
관리실에서 묘목을 받아 가라는 것이었다.
주변 환경 개선의 일환으로 나무 심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살구와 대추의 유실수와 목련,단풍,모과 등
키 큰 나무가 많은 동네 화단에
작은 꽃밭을 만드는 작업은 나도 환영이라
묘목을 받으러 가는 남편에게
얼마 전에 뿌렸던 꽃씨와 상추와 쑥갓의 싹이 돋아 나고 있으니
그 자리를 피해서 묘목을 심으라는 당부를 했다.
꽃씨와 상추,쑥갓은 한쪽 구석에 뿌렸기 때문에
묘목 심는 일에 방해는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덜거럭 거리는 소리가 싱싱하게 들려왔다.
무슨 꽃을 어떻게 심나 구경을 갔더니
연산홍을 화단 가장자리에 둘러 심고 있었다.
'어머나,저곳엔 봉숭아와 분꽃 씨앗을 뿌려 놓은 자리네.
저쪽은 상추와 쑥갓 싹이 돋고 있던 자린데..'
무지한 발길에 채인 상추와 쑥갓 싹이 슬픈 모습으로 누워 있었고
가까스로 발길을 피한 나머지는 비켜간 발자국에 다행이란듯
막 밀려 드는 햇살 한 줌에 얼굴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잡풀도 아니고 봉곳히 솟은 무리를 보지 못했을까.
그 자리는 연산홍을 심지도 않았으니 발걸음에 조금만
배려를 했으면 아무 탈없이 모두 무사했을텐데
아쉬움에 앞서 그만큼 주의를 하라고 일렀던
남편에게 눈화살을 쏘아 대었다.
묘목을 받아 한걸음 늦게 왔더니
부지런한 이웃 아저씨가 어린 싹을 모질게도 밟고 난 후였단다.
내 붉어진 낯을 본 남편은 안절부절 주춤대며 서 있었다.
그곳은 내 텃밭도 아니고 내가 전용할 권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해마다 방치된 상태로 가꾸지 않아서 잡풀만 무성하고
휑한 모습이 안타까워 3층 아줌마와 내가 꽃씨도 뿌리고
모종을 얻어다 심어서 여름을 서운하지 않게 맞고 보내던 곳이었다.
점박이 나리꽃은 올해도 어기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줄 양
뽀족한 줄기를 내밀기 시작했고,비녀꽃 옥잠화도 오므린 입을
벌리기 시작했는데,올해는 봉숭아꽃 분꽃에 옥잠화와 나리꽃이
어우러진 꽃밭이 아닌 연산홍 가족만이 덩그마니 화단을 지키려나 보다.
모든 것은 나름의 생명 기간이 있나 보다.
채 자라지도 못하고 밟혀 버린 어린 싹도 그만큼의 생을 타고 났나 보다.
현관을 나서는 날이면 어기지 않고 그곳에 눈도장을 찍는다.
어제보다 더 자랐나 아까보다 더 예뻐졌나 시선을 꾹꾹 눌러 본다.
구사일생(?)의 행운을 잡은 몸이니 악착같이 살아 남아서
커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을 눈치라도 챘는지
어제보다 더 환한 얼굴로 '안녕하세요?'하며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그래..너라도 잘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