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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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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장의 추억


BY 모퉁이 2006-04-03

 

올해로 군항제가 44회라 하니 내 기억 속의 그 벚꽃장은 몇 회 때였는지

필름을 되감아 보니 이십 년이 왔다갔다 하는 세월이 지났음에라.

 

오늘처럼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지만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란 쉽지 않아 마음은 그리 화창하지 않았던

날로 기억된다.

미장원을 하다 일을 접은 동네 새댁이 꽃구경 가자고 나를 꼬셨다.

자기야 딸린 혹이 없으니 외출이 편했지만 나는 그게 아닌터라 망설였다.

유모차는 자기가 밀겠다고 하는 말에 유모차 옆구리에 기저귀 가방과 분유 젖병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업을 수 있는 포대기를 하나 찔러넣고

약속대로 그 여자가 유모차를 밀고 둘이 아니 셋이 벚꽃장 구경을 갔었다.

 

군항제 구경을 가본 사람은 알테고 안가본 사람도 알아야 되는 것이

무슨무슨 제..하는 행사에는 팔도 명물이란 이름하에 전국의 이름난

상인은 다 모여들어 솔직히 특색없는 일률적인 공연이 많다.

대개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지만 개중에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행위도 많다.

총 쏘아 인형 맞추기나, 물방개 돌려 담배 따먹기도 하고 아무튼 이득없는

장사들로 순진한 사람들 주머니 털리기 좋은 호객꾼들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속칭 야바위라는 것인데 그게 참 사람을 우습게 만든다.

우선 사람들이 구경난 것처럼 둘러 서서 호기심을 부른다.

손에 약간의 속임수를 써서 구경꾼들을 현혹시켜 돈을 꿰가는 일종의

사기(?)라고 보는데 그게 눈에 보이는 헛점을 이용한다는 것이 묘하다.

 

유모차를 끌어주겠다는 약속을 잘 지켜주는 새댁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고 그녀보다 신장이 좀 긴 나는

어느 구경꾼들 너머로 내 고개를 들이 밀게 된 게 그날의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조그만 종재기 같은 그릇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그 속에 감춰진 무엇을 찾아 내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숨겨지는 그것이 보였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못 짚어 내어 허탕을 치며 아~하는 안타까운

탄식을 날리고들 있는 모습이 나는 더 안타까웠다.

우째 저걸 모르노..저 종재기 밑에 솔표 담배 딱지가 들어가구만..

"아저씨~!2번이요."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을 옆에 아저씨가 듣고는

" 새댁인지 아가씬지 잘 맞추네" 하는 소리에 그만 다음 게임도 맞추게 되었다.

참,눈도 어둡제. 쉽구만 다들 못 맞추네.

 

가자는 새댁 말도 못 듣고 몇 번 맞추고 나니 옆에 있던 아저씨가

아가씨가 잘 맞추니 돈을 얼마 걸고 해보란다.

맞추면 건 돈의 몇 배를 주는 게임이라나..

돈이 없는디..하고 지갑을 만지작 거리는데 퍼뜩 스치는 기운이 있었으니..

그날은 내 주머니에 딸아이의 영양제를 사기 위한 돈이 몇 푼 들어 있었다.

 

저렇게 쉬운 것을 다들 못 맞추니 내가 맞추고 영양제도 사고 남는 돈으로

가다가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 딱 좋겠다는 빛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말았어야 했는디..

그만 거기서 그 생각이 날 게 뭐람.

 

두어번 연습 게임이 있었다.

흡~역시나 맞아주어 매우 흡족했다.

이제는 돈을 걸라고 했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고 얼마를 걸었다.

액션은 시작되었고 나의 예리한 눈은 3번으로 찍었다.

울랄라~하려는 순간,흐머~이거야 말로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 가~할 판이었다.

그때 이 노래가 있었나 모르겠지만..암튼..

머리가 쭈빗 서고 식은땀이 쏟아졌다.

처음엔 실수,이번엔 만회의 기회로 한 번 더.

'음마야! 이기 우찌 된 기고..?'

이번엔 정신이 혼미해질 판이었다.

마지막으로 오기까지 더해 눈알이 튀어 나오도록 주시한 번호가

꽝이었을 때의 허탈함이라니..아~~~~~~앙~~~

 

거의 울상이 되어 버린 나를 두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일행들.

세상에 이런 일이..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겨.

머리를 흔들고 정신을 차리자 그때서야 들리는 말씀들.

"쯔쯔..새댁도 당했구만..그러게 그런 곳에 와 기웃거리노."

 

한탕 하고 튀는 그들은 야바우꾼들이었고

잘 맞춘다 잘 한다 한번 걸어봐라 하던 사람들은 모두다 바람잡이들이었고

그 속에 홀린 나는 천하에 어리숙한 맹꽁이였던 것이었다.

 

속은 쓰릴대로 쓰리고 걸음도 쳐지고 무엇보다 그런 장난에 휘말린 내가

바보같아서 머리를 쥐어 박고 싶었다.

유모차는 여전히 그녀가 밀고 맥빠진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벚꽃장 구경이고

 뭐고 다 던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시차 나와 있던 경찰 아저씨를 만났다.

일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초등학생처럼 고자질을 했다.

이러구저러구 했으니 그 나쁜 아저씨들 잡아서 혼내주라고 하니

경찰 아저씨도 젊은 아줌니가 하 어이없는지 허허 웃으면서 단속을 하느라고

하는대도 워낙이 재빨라서 쉽지가 않다고만 하였다.

 

아이 영양제를 못 사 속상해서 미치겠고,새댁 얼굴 보기도 민망한데

아무 것도 모르는 딸랭이는 유모차 안에서 엄맘마를 부르며

나한테 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빈 유모차를 맡기고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 아수라장 같은

벚꽃장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걸어 오는데 속에서 홧덩어리가

용암처럼 솟아 나와 머리 속을 끓게 했다.

몇날을 끙끙 앓으면서도 남편한테는 차마 야바우꾼한테 당했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몇 년을 입 봉하고 지내다가 몇 해 전에 지나가는 이야기 처럼 꺼냈다가

가볍게 한 대 쥐어 박혔다.

 

그렇게 호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이제는 사람들 몰려 있는 곳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못난 행동이 한동안 상처 딱쟁이 처럼

굳어 있던 벚꽃장의 추억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사건이었다.